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사형 집행 15

최후까지 태연(1948년)

관련재판 : lucidity.co.kr/1728 박대령 살해범에 대한 사형집행은 기보한 바와 같이 재판관으로부터 문중위 등 4명에게 사형언도가 있었으나 23일 집행즉전에 일등상사 신상우와 하사 배경용은 특사로 감형되었고 남어지 문상길, 손선호 양 명만은 이날 수색 어느 산골작이에서 각각 총살형이 집행되였다. 총살 전후 양인의 태도는 매우 태연한 인상이였다. 집행관이 총살집행을 선언한 다음 암살을 지휘햇다는 문중위 더러 담배한대를 주며 "할말 없느냐" 무르니 조용하나 열있는 어조로 "23세를 최후로 아모일도 못하고 감이 유감입니다. 조선사람으로서 민족의 비애를 깨닷고 XX의 XX를 받아 민족을 XX하는 군대가 되지말기를 바람니다" 고 최후의 한마디를 남기자 힌수건으로 눈을 가리우고 심장부에 검은표식을 부첫..

허태영, 이유회 사형집행(1957년)

김 중장 살해 1년 8개월만인 24일 상오 10시 3분에 최후 알린 6발의 총성 대구교외 육군 정보학교 훈련장에서 총살 가족의 면회도 불허 삼엄한 경호 하 형장으로 화제와 파란의 연속선을 이루어오던 운명의 사형수 전 육군대령 허태영을 24일 상오 10시 3분 이곳 대구 교외 칠곡군 지천면 산락동 산기슭(육군정보학교 야외훈련장)에서 그를 따르던 운전수 이유회와 함께 '총살'로써 '사형'이 집행됨으로써 마침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날 10시 3분에 총성 2발, 동 4분에 또 2발, 잠시 있다가 1발, 또 1발 도합 총성 6발이 허태영과 이유회의 최후를 알리는 신호같이 들렸다. 이날 허태영과 이유회는 상오 9시 반 '앰브렌스'로 헌병들의 삼엄한 경호 아래 극비밀리에 형장으로 압송되었으며 가족들에 대한 면..

김재규 사형 집행(1980년)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에 관련되어 사형이 확정된 김재규(54/전 중앙정보부장), 박선호(45/전 중정 의전과장), 이기주(32/전 중정 경비원), 유성옥(34/전 중정 운전사), 김태원(30/전 중정 경비원) 등 5명에 대한 형집행이 24일 상오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으로 집행됐다. 이들 5명중 김재규는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수괴 미수로, 박선호, 이기주, 유성옥, 김태원 등 4명은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주요임무 종사 미수죄로 육군 계엄보통군법회의와 육군 고등군법회의에서 각각 사형을 선고받고 지난 2월 5일 대법원에 상고했는데 지난 20일 대법원이 이를 기각함으로써 형이 확정되어 사형이 집행됐다. 이들 5명의 형집행에는 검찰관과 검찰서기, 서울구치소관계관, 목사, 신부, 승려등이 입회했다. -경향신문 ..

김대두 등 사형집행(1976년)

살인마 김대두(28)와 최정관(27)에 대한 사형이 28일 서울구치소 사형 집행장에서 교수형으로 집행됐다. 최후진술에서 김은 "지은죄를 깊이 뉘우친다. 전과자들에 대한 사회적 냉대가 시정됐으면 한다. 그동안 돌봐준 교도관과 목사님께 감사드린다" 고 말했고, 최는 "사회에 커다란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며 피해자와 그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말했다. 김은 전과 2범으로 작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용돈마련을 목적으로 서울 경기 지방에서 전후 9차례에 걸쳐 17명을 연속 살해하고 지난 3월 26일에 사형이 확정됐다. -동아일보 1976년 12월 29일

인혁당 관련 8명 사형 집행(1975년)

※ 주 : 이 사건은 당시 군사정권의 사법살인 사건이며, 재심에서 전원 '무죄'를 선고받은 사건입니다. 지난 8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인혁당 재건단체 사건 관련자 도예종(50)등 8명이 9일 서울구치소에서 교수형으로 사형이 집행됐다. 비상군법회의 관계자에 따르면 형 집행에는 비상군법회의 검찰관, 서울구치소장, 제1육군교도소 군의관, 군목, 입회서기, 구치소집행단 등 6명이 관여했다. 집행에 앞서 인정신문과 1-2-3심 판결내용 확인절차를 거친 후 개인별로 유언을 청취했다. 그러나 사형수 대부분이 종교의식을 거부해 이 절차는 생략된 것으로 전해졌다. 도예종은 조국이 공산주의 아래 통일되기 바란다는 말을 남겼고 다른 7명도 자신의 사상적 신념과 연관된 것이거나 가족문제 등에 관한 유언을 했다고 관계관은..

간첩 이수근 사형 집행(1969년)

3일 오전 11시 55분 서울지검은 사형이 확정된 위장 귀순 간첩 이수근(45/전 북괴 중앙통신부사장)을 서울구치소 집행사에서 사형을 집행했다. 지난 67년 3월 22일 판문점을 통해 위장귀순한 이는 자유를 배반하고 위장귀순 2년 3개월 11일(833일)만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날 사형집행에는 집행관인 서기석 서울구치소장과 서울지검 김병하 검사, 교회사(교무과장), 유언녹취관(서무과장), 검시관(의무과장), 계호과장 등이 입회한 가운데 법무장관의 형집행명령(지난 1일)에 따라 집행됐다. 이는 지난 5월 10일 서울형사지법에서 국가보안법반공법, 간첩죄 등이 적용되어 처조카 배경옥(30/서울고법에 항소중)과 함께 사형을 선고받은 후 항고기간인 7일 간이 지나도록 항소를 하지 않아 지난 5월 7일 사..

두 사형수 집행(1967년)

검찰은 15일 상오 경찰관을 살해한 김영진 피고인(51/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554)과 간첩 임차종(36/부산시 동대신동 2가 381)등 2명을 서울교도소에서 사형집행했다. 김 피고는 65년 4월 2일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에 있는 속칭 법매산에서 도벌하다 이를 적발한 강화서 근무 이영찬 순경을 도끼로 찍어 죽여 살인 및 산림법 위반 혐의로 65년 11월 30일 사형이 확정되었고 임 피고는 6.25사변때 월북, 간첩으로 남하하여 체포, 62년 4월 4일 사형이 확정되었었다. -경향신문 1967년 5월 15일

최병복 사형 집행(1966년)

유수남 군(5) 유괴살해범 최병복(31)피고에 대한 사형집행이 9일 하오 서울지검 주상수 검사 지휘로 서울교도소에서 집행됐다. 최는 지난 62년 2월 유군을 유괴, 대구에서 택시에서 밀어 떨어뜨리고 병원으로 옮기는 중 유군의 팔을 꺾고 목을 졸라 죽인 후 운전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운 후 돈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향신문 1966년 5월 9일

김정제 사형집행(1961년)

간첩죄로 지난 91년(*1958년) 10월 20일 대법원에서 사형 언도를 받은 김정제가 지난 7월 11일 공범 한영창, 오영근과 같이 사형이 집행되었다고 26일 법무부에서 발표하였다. 김정제는 충남 보령 출신으로 해방 후 동대문경찰서장 내무부보안과장 경무과장 등을 역임한 자로서 동대문서장 당시 남로당 중앙당 특수부에 입당한 이래 4284년(*1951년) 7월 평양에서 밀파된 한영창으로부터 간첩지령문을 받고 간첩활동을 계속했으며 5.20 선거 당시에는 민의원으로 출마키 위해 자유당에 가입절차를 밟는 등 그의 기반을 공고히 닦고 괴뢰집단에 끊임없이 각종 정보를 무전으로 보고한 거물 간첩이었던 것이다. -동아일보 1961년 7월 27일

이정재, 신정식 사형을 집행 (1961년)

혁명재판소 상소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정재(45)와 신정식(33)은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으로부터 형집행이 '확인'되어 19일 하오 3시 37분경 수감중인 서울형무소에서 교수로 형이 집행되었다. 신정식의 공범으로 인정되었던 김한용(36=전 순경)은 박 최고회의의장에 의하여 2년이 감형되어 '징역 5년'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최고회의공보실은 19일 상오 10시 40분 이 확인사실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혁재및혁검조직법' 제 9조의 2에의한 의장의 '형집행확인조치'인 것이며 혁명재판소 상소심 판결이 있은 뒤 처음으로 내려진 조치이다. 공보실은 박 의장의 확인조치가 취해진 시간이나 이, 신 두 사형수에 대한 사형집행 시간 등을 일체 밝히지 않고 다만 "사형의 집행은 24시간 내에 법의 절차에 따라 행하여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