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일혁명당 사건에 관련, 사형이 확정된 김질낙(38)이 15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집행됐다.
이 사건에 관련, 사형이 확정됐던 통혁당 당수 김종태, 동 당 지도위원 이문규 등은 이미 69년 말 사형이 집행됐었다.
이들은 64년 3월 통일혁명당의 조직,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고 공산정권 수립을 도모했다는것으로 69년 1월 서울형사지법에서 사형이 선고, 그해 7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었다.
동아일보 1972년 7월 17일
1. 사건의 성격: '지하 정당 조직을 통한 정권 전복 기도'
- 피고인: 김질락 (통일혁명당 지도위원).
- 사건 요약: 1964년 조직된 통일혁명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 정부 전복과 공산 정권 수립을 꾀했다는 혐의로 지도부 전원이 검거된 사건.
- 집행 시점: 1972년 7월 15일 오전 (69년 사형 확정 후 약 3년 만의 집행).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이례적인 집행 유예 기간: 3년의 공백
당수 김종태와 이문규가 1969년 말에 신속히 처형된 것과 달리, 김질락은 사형 확정 후 약 3년이나 지난 1972년에 집행되었습니다.
- 전향 및 수사 협조: 김질락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자백하고 '전향서'를 썼으며, 옥중에서 수기인 [어느 지식인의 회상]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 심리전 활용: 정보 당국은 그의 전향과 참회 과정을 대북 심리전이나 반공 교육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집행을 미루었으나, 결국 유신 체제 직전의 경색된 국면에서 집행을 단행했습니다.
② 통혁당 지도부의 최후
- 김종태 (당수): 1969년 7월 집행. 북한에서는 그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평양에 그의 이름을 딴 학교(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 등)를 세울 정도로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 이문규 (지도위원): 1969년 12월 집행.
- 김질락 (지도위원): 1972년 7월 집행.
- 지도부 3인이 모두 처형됨으로써 60년대 지하 조직 사건의 사법적 처리는 일단락되었습니다.
③ 지식인층의 가담과 60년대 시대상
통혁당 사건은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 엘리트 지식인과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대거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김질락 역시 뛰어난 문장력을 가진 지식인이었으나,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보안법상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3. 시대적 맥락: 1972년 7월과 남북 관계
기사가 보도된 시점은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된 지 불과 보름 정도 지난 시기입니다. 겉으로는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듯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위장 평화'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간첩 및 공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형 집행을 단행하여 내부 결속을 다지려 했던 유신 정권 초기 특유의 이중적 긴장 상태를 보여줍니다.
통일혁명당 지도부 처형 일지
| 이름 | 직책 | 사형 확정 | 형 집행일 | 특징 |
| 김종태 | 당수 | 1969. 07. | 1969. 07. 10. | 북한의 영웅 칭호 수여 |
| 이문규 | 지도위원 | 1969. 07. | 1969. 12. 22. | 학보병 출신 엘리트 |
| 김질락 | 지도위원 | 1969. 07. | 1972. 07. 15. | 옥중 수기 집필 및 전향 |
4. 시사점
김질락의 처형은 60년대 지하 조직 운동의 종언을 고하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그가 남긴 수기는 당시 지식인들이 왜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되었는지,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한 환멸과 공포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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