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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사형 집행

통혁당 사건 관련 김질낙 사형 집행(1972년)

Lucidity1986 2023. 12. 16. 23:17

좌측부터 김종태, 이문규, 김질락(사형수)

통일혁명당 사건에 관련, 사형이 확정된 김질낙(38)이 15일 오전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집행됐다.

이 사건에 관련, 사형이 확정됐던 통혁당 당수 김종태, 동 당 지도위원 이문규 등은 이미 69년 말 사형이 집행됐었다.

이들은 64년 3월 통일혁명당의 조직, 대한민국 정부를 전복하고 공산정권 수립을 도모했다는것으로 69년 1월 서울형사지법에서 사형이 선고, 그해 7월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됐었다.

 

동아일보 1972년 7월 17일

 

1. 사건의 성격: '지하 정당 조직을 통한 정권 전복 기도'

  • 피고인: 김질락 (통일혁명당 지도위원).
  • 사건 요약: 1964년 조직된 통일혁명당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 정부 전복과 공산 정권 수립을 꾀했다는 혐의로 지도부 전원이 검거된 사건.
  • 집행 시점: 1972년 7월 15일 오전 (69년 사형 확정 후 약 3년 만의 집행).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이례적인 집행 유예 기간: 3년의 공백

당수 김종태와 이문규가 1969년 말에 신속히 처형된 것과 달리, 김질락은 사형 확정 후 약 3년이나 지난 1972년에 집행되었습니다.

  • 전향 및 수사 협조: 김질락은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행위를 자백하고 '전향서'를 썼으며, 옥중에서 수기인 [어느 지식인의 회상]을 집필하기도 했습니다.
  • 심리전 활용: 정보 당국은 그의 전향과 참회 과정을 대북 심리전이나 반공 교육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집행을 미루었으나, 결국 유신 체제 직전의 경색된 국면에서 집행을 단행했습니다.

② 통혁당 지도부의 최후

  • 김종태 (당수): 1969년 7월 집행. 북한에서는 그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를 수여하고 평양에 그의 이름을 딴 학교(김종태전기기관차공장 등)를 세울 정도로 중요하게 다뤘습니다.
  • 이문규 (지도위원): 1969년 12월 집행.
  • 김질락 (지도위원): 1972년 7월 집행.
  • 지도부 3인이 모두 처형됨으로써 60년대 지하 조직 사건의 사법적 처리는 일단락되었습니다.

③ 지식인층의 가담과 60년대 시대상

통혁당 사건은 서울대 등 명문대 출신 엘리트 지식인과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 대거 연루되었다는 점에서 당시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김질락 역시 뛰어난 문장력을 가진 지식인이었으나, 이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가보안법상 가장 무거운 형벌인 사형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3. 시대적 맥락: 1972년 7월과 남북 관계

기사가 보도된 시점은 '7·4 남북 공동 성명'이 발표된 지 불과 보름 정도 지난 시기입니다. 겉으로는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듯했으나, 내부적으로는 '위장 평화'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간첩 및 공안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형 집행을 단행하여 내부 결속을 다지려 했던 유신 정권 초기 특유의 이중적 긴장 상태를 보여줍니다.


통일혁명당 지도부 처형 일지

이름 직책 사형 확정 형 집행일 특징
김종태 당수 1969. 07. 1969. 07. 10. 북한의 영웅 칭호 수여
이문규 지도위원 1969. 07. 1969. 12. 22. 학보병 출신 엘리트
김질락 지도위원 1969. 07. 1972. 07. 15. 옥중 수기 집필 및 전향

4. 시사점

김질락의 처형은 60년대 지하 조직 운동의 종언을 고하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특히 그가 남긴 수기는 당시 지식인들이 왜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되었는지, 그리고 그 끝에서 마주한 환멸과 공포가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남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