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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종

기타 관심사/질병 2020. 12. 12. 19:21 Posted by Lucidity1986

부종(edema)



부종이란 세포 바깥에 있는 체액(體液)이 혈관 이외의 부분에 과하게 축적되는 현상을 말한다. 

부종은 병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도 있지만 생리적 현상에 의해서도 발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오랫동안 서 있거나 앉은 자세 후에 다리가 붓는다던지 등


부종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1. 국소적인 부종

 - 관절에 염좌가 있거나 근육손상으로 인해 야기되는 경우

 - 탄력붕대를 오래 감고 있어 혈액이나 임파액의 순환을 저해시킨 경우

 - 직업 등의 이유로 오래 서 있는 경우

 - 다리를 꼬고 앉는 자세는 허벅지의 혈액순환이 방해되어 종아리에 부종이 생길 수 있다. 이는 몸에 꽉 끼는 옷을 입는 경우도 포함된다.


2. 전신부종

 - 염분으로 인한 부종(라면먹고 잤더니 등..)

 - 항 고혈압제나 호르몬제, 소염제 등 약물로 인한 부종

 - 파오후 쿰척쿰척 현상에 의한 부종


저단백혈증(hypoproteinemia) 이 있을 경우에는 가슴이나 배에 부종이 생길 수 있으며 각각 흉수와 복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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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질시대의 역사 표

기타 관심사/지질 2020. 5. 11. 17:50 Posted by Lucidity1986

출처 : 나무위키


이름

하위구분

시기(년)

비고

명왕누대

4,500,000,000~3,800,000,000

이 당시는 표면이 아직 매우 뜨겁고 화산 활동이 활발한, 말 그대로 지옥 그 자체와 같은 시기였다. 이 시기의 지구는 육지는 뜨거운 용암과 화산 활동이 쉴새 없이 진행되었다. 명왕누대 초반부인 지구의 강착 시절 이후 중기 명왕누대 시기 이후에는 맨틀, 지각이 생긴 시대이다. 또한 생명체와 화석 등의 생물학적 증거는 물론, 돌(지르콘)과 같은 지질학적 증거가 발견되지 않은 시대이다.

시생누대

초시생대

3,800,000,000~3,600,000,000

지구의 지각열류량이 지금의 3배 정도 지금보다 8배 이상 많았던 칼륨-40, 지금보다 훨씬 많이 존재했던 우라늄-235와 우라늄-238

고시생대

3,600,000,000~3,200,000,000

칼륨-40과 우라늄-235가 뿜어내는 열로 인해 지구에 초대륙보다는 작은 대륙들이 많이 생성, 판만 800개에 달함, 광합성을 하는 세균(細菌)이 출현

중시생대

3,200,000,000~2,800,000,000

칼륨-40과 우라늄-235의 양이 어느정도 줄게 되자 초대륙도 많이 형성되었다. 또한 화산 군도(群島)도 급속히 줄어들었다.

신시생대

2,800,000,000~2,500,000,000

지표에서 갓 나온 용암의 온도가 1,600도 이하로 내려가게 되어 스피니펙스 조직을 생성할 만한 용암이 더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최초의 진핵생물이 이 시대에 존재

원생누대

2,500,000,000~542,000,000

화산암보다 퇴적암이 우세하며, 미량의 산소(酸素)가 존재하여 생물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초기에 원핵 생물이 존재하다가 중기는 진핵생물이, 말기에는 후생 동물도 나타났다. 세계의 순상지(楯狀地)에 널리 분포하며 철, 니켈 등의 유용 광물이 많이 산출된다. 눈덩이 지구가 (실제로 일어났다면) 일어났던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현생누대

고생대

캄브리아기

542,000,000~488,300,000

눈이 다섯 개 달린 오파비니아, 뾰족뾰족한 바늘이 달렸으며 한때는 다리와 바늘이 거꾸로 재현됐던 할루키게니아, 캄브리아기 바다의 제왕이었던 아노말로카리스 등 기묘한 생김새의 동물들이 출토됐다.

오르도비스기

488,300,000~443,700,000

삼엽충이 상당히 진화해 많은 종류가 출현했으며, 완족류, 두족류, 극피동물, 코노돈트 등도 빠른 속도로 진화했다.

5번의 대멸종 중 첫 번째 대멸종인 오르도비스기 대멸종이 있었다.

실루리아기

443,700,000~416,000,000

무척추동물에서는 상판산호나 사사산호가 특히 번성하였고, 세계 각지에서 초성석회암을 형성하였다. 완족류가 급속히 발전하였고, 삼엽충은 복잡한 장식을 가진 표준화석이 많다. 바다나리·바다능금 등의 극피동물도 다산한다. 반색동물인 필석의 번성도 특기할 만한 점이다. 한편 육상 식물이 이 즈음에 출현했지만 극히 수가 적었고 해안이나 하천 근처에 분포하였다. 실루리아기 중~후기에 접어들면서 절지동물이 동물 최초로 육상진출을 하게 된다.

데본기

416,000,000~359,200,000

데본기에는 양서류가 등장했으며 절지동물도 본격적으로 육지에 진출해 생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완족류도 마찬가지로 뚜렷하게 번성하여 일부 종이 표준화석이 되기도 하였다. 상어류와 갑주어류, 경골어류(硬骨魚類)도 이때 출현. 특히 어류의 번성이 가장 뚜렷하여 어류의 시대라고 불리기도 한다.그리고 이때 산호초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크티오스테가를 포함한 초기 사지동물들도 출현하였다. 5대 대멸종 중 두 번째 대멸종인 데본기 대멸종이 있었다. 삼엽충은 이 대멸종을 견뎌낸 프로에투스(Proetida) 목을 제외한 모든 목이 데본기를 넘기지 못하고 멸종했다.

석탄기

359,200,000~299,000,000

나무가 처음으로 등장해서 육지에 대규모의 삼림이 형성되어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대폭 증가하였다. 바퀴벌레나 흰개미같은 나무를 파먹는 벌레와 버섯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이전이었기 때문에 나무가 대부분 온전하게 지표면에 퇴적되었기 때문에 석탄이 대규모로 생성될 수 있었다. 기온이 높고 나무의 등장으로 산소 비율이 공기의 1/3이나 돼서 메가네우라나 아르트로플레우라와 같은 거대 절지 동물이 돌아다니던 시기이기도 했다.

페름기

299,000,000~250,000,000

고생대의 마지막 시기이며 페름기 말엽 지구 역사상 최대의 대멸종이라 불리는 페름기 대멸종이 발생했다. 이 시기를 기준으로 트라이아스기와 구분한다. 또한 바다는 석탄기에도 그랬듯 연골 어류들이 크게 번성했으며, 석탄기보다는 그 수가 줄었으나 여전히 번성했으며 정어리만 한 작은 무리지어 다니는 종류부터 12m 정도에 육박하는 현재까지 알려진 고생대 최대의 생물일 것으로 추정되는 파라헬리코프리온에 이르기까지의 엄청난 다양성을 자랑했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250,000,000~200,000,000

주요 대멸종 사건 중 두 번이 각각 트라이아스기의 직전(페름기 대멸종)과 끝(트라이아스기 해양 생물 대멸종)에 자리잡고 있다. 즉, 생태학적으로는 헬게이트나 다름없던 시기이며 공룡들 또한 이 시기에 발견되는 종류는 매우 적은 편이다.

쥐라기

200,000,000~145,000,000

트라이아스기 말기의 대멸종 사태 이후부터 시작되었고, 초 대륙이었던 판게아가 로렌시아 대륙과 곤드와나 대륙으로 나뉘었다. 현재보다 온난, 습윤한 기후로 인해 거대한 소철류, 침엽수와 속새류, 고사리등이 번성했다. 쥐라기 후반기에는 현재 지구에 제일 번성한 식물인 속씨식물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쥐라기에 제일 흔했던 식물은 고생대부터 존재해온 겉씨식물 이었다.

백악기

145,000,000~65,000,000

쥐라기 시기보다도 많은 종류의 공룡들이 지구 곳곳에 살고있었던 명실상부한 공룡 천하의 시대였다. 공룡뿐만 아니라 원시포유류가 유대류등으로 진화하기도 하였다. 육상 생물들의 75%가 절멸하는 K-Pg 멸종이 일어났다.이 대멸종 때문에 용반목 수각류의 한 갈래인 조류(동물)를 제외한 공룡을 포함한 파충류들은 대부분 멸종하고, 익룡, 수장룡, 장경룡, 암모나이트들 역시 멸종하였다.

신생대

고제3기

팔레오세

65,000,000~56,000,000

팔레오세 초반의 바다는 생물의 다양성이 적었지만 팔레오세가 끝날 무렵 열대기후로 변화하며 극지방을 포함한 전 지구적으로 난류가 흐르기 시작해 많은 해양생물들이 번영하게 되었다. 백악기말기에 크레톡시리나 같은 악상어들을 몰아내고 최상위 포식자로 군림하던 모사사우루스나 수장룡이 사라진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 자리는 다시 상어의 차지가 되었다.

고제3기

에오세

56,000,000~33,900,000

에오세 초반에는 남극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가 아직 붙어있었고 약 4,500만 년 전에야 분리된다. 북부 로라시아 초대륙이 유럽, 북아메리카, 그린란드로 분리되었으며 북아메리카 서부에서 조산운동이 시작되었다. 인도 아대륙은 아시아와 충돌하기 시작하여 히말라야 산맥의 형성이 시작되었다. 오늘날 현존하는 태반류 포유동물의 목(目)의 대부분이 등장했다. 최초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영장류가 에오세 초반에 출현했고 코끼리의 친척뻘인 바다소목 동물들도 진화하였다. 고래의 조상도 에오세 초반에 나타났고 에오세 후반에는 바실로사우루스와 같은 거대한 원시 고래도 등장하였다.

고제3기

올리고세

33,900,000~23,030,000

대륙의 이동이 계속되었는데 남극은 남아메리카와 완전히 분리되었고 남극순환류가 흐르기 시작해 남극의 기온은 빠르게 내려가 빙원이 형성되었다. 남아메리카는 다른 대륙들과 분리되어 고유한 동물상이 발달되었으며 유럽에서는 알프스 산맥의 형성이 계속되었다. 화석기록의 유사함을 미루어 보아 올리고세 초반에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사이에 육교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 지구적으로 초원이 확장되어 탁 트인 지형이 많아져 동물들이 활동할 수 있는 지역이 늘어났고 그에 따라 포유류의 거대화가 나타났다. 아시아에서는 최초의 고양잇과 동물인 프로아일루루스가 등장하였고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15톤에 육박하는 육상 포유류인 파라케라테리움도 아시아에서 출현하였다.

신제3기

마이오세

23,030,000~5,330,000

이 시기에는 오늘날 존재하는 식물의 대부분이 출현하였으며 동물 역시 상당수가 오늘날의 것과 흡사했다. 조류(鳥類)의 경우 거의 모든 과(科)가 출현한 것으로 보이며, 고래목 동물들이 다양화 하였는데 이들을 먹이로 삼는 리비아탄과 같은 거대한 육식 고래나 메갈로돈 같은 거대 상어, 말과 비슷한 칼리코테리움이나 코끼리와 비슷한 곰포테리움 등도 번성하였다. 인류 진화사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 이 시기에 유인원(類人猿)이 처음 나타나 다양화 하였으며 인류(人類)의 조상과 침팬지의 조상이 분화되어 각자 다른 진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신제3기

플라이오세

5,330,000~2,580,000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가 연결되면서 많은 동식물의 교류가 있었는데 이 사건을 아메리카 대교환(Great American Interchange)이라고 부른다. 남아메리카에서는 땅늘보, 글립토돈트, 아르마딜로 등이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 백악기 이후로 처음으로 북아메리카의 동물들이 남아메리카로 오게 되면서 일부 남미 고유종들은 생존경쟁에서 밀리고 멸종된다. 남아메리카의 공포새들은 드물어졌고 그들 중 일부는 역시 북아메리카로 건너갔다. 아시아는 북아메리카가 연결되면서 일부 낙타 종들은 북아메리카에서 아시아로 건너갔다. 기후가 추워지면서 유럽에서는 앨리게이터와 크로커다일무리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유라시아에서는 처음으로 하이에나 무리와 검치호무리가 등장한다. 호주 대륙에서는 여전히 유대류가 강세를 보였고 첫 번째 설치류가 유입된다.

대한민국에서는 제주도의 서귀포층이 대표적인 플라이오세 화석산출지이다. 조개, 어류, 고래, 상어, 산호화석 등이 산출된다. 동해에서는 화산활동으로 인해 독도가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제4기

플라이스토세

2,580,000~10,000

플라이스토세의 특징은 빙하기로, 아시아에서는 오늘날의 몽골,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미국의 5대호 부근까지 빙하가 확장되었다. 육지는 오늘날과 거의 비슷한 형태였으나 많은 양의 바닷물이 빙하에 갇히면서 해수면도 낮아져, 한반도는 일본 열도와 연결되어 있었으며 동해는 내륙 호수가 되었다. 시베리아와 알래스카도 베링 육교로 연결되어 있었다.

제4기

홀로세

10,000~현재

인간 기준으로는 구석기(舊石器) 시대가 막을 내리고 중석기 시대가 시작된 시기다. 매머드, 스밀로돈, 다이어울프, 아크토두스 같은 거대 동물들이 대거 멸종하였다. 기후변화와 인류의 영향이 원인인 것으로 지목되지만 이미 일부 학자들에 의해 비판받고 있는 추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멸종원인은 전혀 모르나 홀로세의 거대동물들이 어떤 원인으로 멸종한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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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 연도(500~경술국치)

기타 관심사/역사 2019. 3. 25. 21:58 Posted by Lucidity1986

566년

남진(南陳) 2대 세조(世祖) 문제(文帝) 진천(陳蒨) 7년(~566)

북제(北齊) 5대 후주(後主) 고위(高緯) 2년(~577)

북주(北周) 3대 고조(高祖)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 6년(~578)

신라(新羅) 24대 진흥왕(眞興王) 김삼맥종(金三麥宗) 27년(~576)

고구려(高句麗) 25대 평원왕(平原王) 고양성(高陽成) 8년(~590)

백제(百濟) 27대 위덕왕(威德王) 부여창(扶餘昌) 13년(~598)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 탄생하다.


567년

신라 26대 진평왕(眞平王) 탄생하다.(화랑세기본)


568년

진흥왕이 대창(大昌)으로 개원하다.


572년

진흥왕이 홍제로 개원하다.


576년

신라(新羅) 25대 진지왕(眞智王) 김사륜(金舍輪 혹은 金金輪) 원년(~579)


577년

북제(北齊) 6대 유주(幼主) 고항(高恒) 원년(~577)


위덕왕이 왕흥사(王興寺)를 창건하다.

북주가 북제를 멸망시키고 마지막 황제인 유주를 장안으로 압송하다.


579년

북주(北周) 5대 정제(靜帝) 우문천(宇文闡) 원년(~581)

신라(新羅) 26대 진평왕(眞平王) 김백정(金伯淨) 원년(~632)


581년

수(隋) 초대 문제(文帝) 양견(楊堅) 원년(~604)


양견이 북주의 황제 우문천에게 선양받아 수나라를 건국하다.


583년

남진(南陳) 5대 후주(後主) 진숙보(陳叔寶) 원년(~589)


586년

고구려가 대성산성(大城山城)에서 장안성(長安城)으로 천도하다. 둘 다 평양에 있다.


589년

수나라가 남진(南陳)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하여, 위진남북조시대(魏晉南北朝時代)가 종결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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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년

당(唐) 3대 고종(高宗) 이치(李治) 4년(~683)

신라(新羅) 28대 진덕여왕(眞德女王) 김승만(金勝曼) 7년(~654)

고구려(高句麗) 28대 보장왕(寶臧王) 고장(高臧) 12년(~668)

백제(百濟) 31대 의자왕(義慈王) 부여의자(扶餘義慈) 13년(~660)


봄에 백제가 크게 가물에 백성이 굶주리다.

8월에 의자왕이 왜(倭)와 우호관계를 맺다.

비잔티움 제국의 황제 콘스탄스 2세가 교황 마르티노 1세를 체포하다.


654년

신라(新羅) 29대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 김춘추(金春秋) 원년(~661)


김춘추가 신라의 왕이 됨으로써 성골 가계가 끊어지고 진골(眞骨)의 왕위 세습이 시작되다.


655년

2월에 백제가 태자궁을 극히 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손질하다. 왕궁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우다. 5월에 붉은 말이 북악(北岳)의 오함사(烏含寺)에 들어가서, 울면서 불우(佛宇)를 돌다가 며칠만에 죽다. 7월에 마천성(馬川城)을 보수하다. 8월에 의자왕이 고구려 및 말갈과 함께 신라의 30여 성을 공격하여 깨뜨리다. 이에 무열왕이 당에 사신을 보내 배알(拜謁)하고, 표문(表文)을 올려 백제가 한 행위를 고하다.


659년

백제에서 2월에 여러 마리의 여우가 궁궐 안으로 들어왔는데 흰 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上佐平)의 책상 위에 앉다. 4월에 태자궁(太子宮)의 암탉이 참새와 교미하다. 장수를 보내 신라의 독산(獨山)·동잠(桐岑) 2개의 성을 침공하다. 5월에 왕도(王都) 서남쪽의 사비하(泗沘河)에 큰 물고기가 나와 죽었는데 길이가 세 장(丈)이었다. 8월에 어느 여자의 시체가 생초진(生草津)에 떠올랐는데 길이가 18자이었다. 9월에 궁중의 느티나무가 울었는데 마치 사람이 우는 소리 같았다. 밤에는 귀신이 궁궐 남쪽 길에서 울다


660년

백제(百濟) 32대 풍왕(豊王) 부여풍(扶餘豊) 원년(~663)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하여 사비성(泗泌城)이 함락됨으로써, 백제는 31대 678년 만에 멸망하다. 이어 백제 부흥군에 의해 부여풍이 즉위하다.

백제의 계백, 의직, 상영 등이 사망하고 신라의 관창, 반굴, 금강 등이 사망하다.


662년

신라(新羅) 30대 문무왕(文武王) 김법민(金法敏) 2년(~681)


고구려의 대막리지(大莫離支) 연개소문(淵蓋蘇文) 이 사수에서 방효태(龐孝泰)의 당군을 궤멸시키다.

탐라국주 도동음률(徒冬音律)이 신라에 항복하다.


663년

왜(倭)에서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4백 여 척의 군함(軍艦)과 최소 27,000명(최대 4만 명)의 구원병을 파견하나 백강 전투에서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에게 패하다.


664년

백제의 임존성(任存城)이 함락됨으로써 백제 부흥운동이 진압되다.

고구려의 대막리지 연개소문(淵蓋蘇文)이 사망하다. (664~666년 사이)


667년

당이 고구려의 연남생(淵男生)을 구원한다는 명분 하에 3차 고당전쟁(高唐戰爭)을 일으키다.


668년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이 평양성을 점령함으로써 고구려가 28대 705년 만에 멸망하다.


670년

신라와 당나라 사이에 나당전쟁(羅唐戰爭)이 발발하다.

토번(吐蕃)과 당나라 사이에 대비천(大非川) 전투가 발발하나 토번의 명장 가르친링(論欽陵)이 설인귀(薛仁貴)와 곽대봉의 당군을 궤멸시키다.


671년

나당전쟁(羅唐戰爭) - 신라가 당나라로부터 사비성(泗泌城)을 탈환하여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하다.


673년

신라의 태대각간(太大角干) 김유신(金庾信)이 노환으로 사망하다. 이후 835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다.


675년

나당전쟁(羅唐戰爭) - 매소성(買肖城) 전투에서 당나라의 이근행(李謹行)이 이끄는 20만 대군을 신라군이 크게 격파하여 말 30,380필과 3만여 명 분의 무기를 빼앗다. 이 전투에 화랑 김원술(金元述 : 金庾信의 아들)이 참여하다.


676년

당의 안동도호부(安東都護府)가 요동으로 후퇴하고, 기벌포(伎伐浦) 전투에서 설인귀(薛仁貴)가 이끄는 당의 수군을 격파하여, 당나라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의지를 상실함으로써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최종 승리하다. 이로써 대동강(大同江)이남을 신라가 전부 지배하게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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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3년

후량(後梁) 3대 말제(末帝) 주우정(朱友貞) 원년(~923)

신라(新羅) 53대 신덕왕(神德王) 박경휘(朴景暉) 2년(~917)

후백제(後百濟) 초대 견훤(甄萱) 22년(~935)

태봉(泰封) 초대 궁예(弓裔) 13년(~918)

발해(渤海) 15대 대인선(大諲譔) 8년(~926)


란도가 121대 로마 교황으로 즉위하다.

아스투리아스 왕국이 오비에도에서 레온으로 천도하였고, 이후로 레온 왕국이라 불리게 되다.

갈리시아 왕국의 오르도뇨 2세가 이끈 원정대가 타호 강 중류의 에보라를 일시적으로 점령하는 기염을 토하다.


914년

궁예가 연호를 정개로 개원하다.

비잔티움 제국과 불가리아 간에 전쟁이 일어났다.

갈리시아의 오르도뇨 2세가 레온 왕국의 왕도 겸하게 되며, 레온 - 갈리시아 왕국의 판도는 코임브라 백작령, 포르투 백작령, 갈리시아 왕국, 레온 왕국, 카스티야 왕국을 포함하게 되다. 이 퍼유는 10년정도 유지된다.

요한 10세가 122대 로마 교황으로 즉위하다.


915년

궁예가 황후인 강비(康妃)와 두 태자들을 죽이다.


918년

고려(高麗) 초대 태조(太祖) 왕건(王建) 원년(~943)


태봉의 시중(侍中) 왕건이 역성혁명을 일으켜 폭군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세우다.


919년

고려가 도읍을 송악(松嶽)으로 옮겼으며, 만월대(滿月臺)를 창건하다.


920년

후백제가 신라를 침공하자 고려가 구원군을 보냈으나, 후백제의 끈질긴 공격 끝에 대야성이 함락되다.


924년

신라(新羅) 55대 경애왕(景哀王) 박위응(朴魏膺) 원년(~927)


926년

발해의 대인선이 요의 태조 야율아보기(耶律阿保機)에게 항복함으로써 발해가 멸망하다. 이에 요는 발해의 옛 땅에 동란국(東丹國)을 건국한 뒤 황제의 맏아들 야율돌욕(耶律突欲)으로 하여금 그곳을 통치하도록 하다.


927년

신라(新羅) 56대 경순왕(敬順王) 김부(金傅) 원년(~935)

요(遼) 2대 태종(太宗) 야율덕광(耶律德光) 원년(~947)


후백제의 견훤이 신라를 침공하여 경애왕을 죽이고 문성왕(文聖王)의 후손인 김부를 왕으로 앉히다. 이에 고려군이 철군하는 후백제군을 따라잡으나, 공산 전투에서 크게 참패(慘敗)하여 고려 측은 신숭겸(申崇謙)등 여러 장수들과 1만 병사를 모두 잃고 왕건 등 극소수만 탈출하게 되어 힘의 균형이 잠시 무너지게 되다.


930년

고창 전투에서 고려가 후백제에 대승하다.

우산국이 고려에 토산물을 바치다.


933년

사탄 전투에서 후백제의 태자 신검(神劍)이 유금필(庾黔弼)군과 마주쳐 싸우지도 못하고 달아나고, 이후에 자도에서 치욕을 만회하기 위해 유금필의 결사대를 재차 공격하나 금달, 환궁 등 후백제 장군 7명이 생포되고 이하 수많은 병사들을 잃다.


934년

운주 전투에서 유금필(庾黔弼)의 활약으로 고려가 후백제에 승리하여 웅진 이북 30여 성이 고려로 넘어가, 서부 전선에서도 고려가 확고한 우위를 점하다.


935년

후백제(後百濟) 2대 신검(新劍) 원년(~936)


신라의 마지막 임금 경순왕이 고려에 귀부하여 신라가 56대 992년 만에 멸망하다. 수도였던 금성(徐羅伐)이 경주(慶州)로 개칭되다.

후백제의 태자 신검이 정변을 일으켜 후궁 소생의 금강(金剛)과 파진찬(波珍飡) 최승우(崔承祐)를 죽이고 견훤(甄萱)을 금산사(金山寺)에 유폐하다.

견훤이 사위 박영규(朴英規)등의 도움으로 탈출하여 고려에 귀순하다.


936년

2월에 신검이 즉위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후백제의 임금으로 등극하다.

9월에 고려 태조가 견훤과 더불어 10만의 고려군을 이끌고 후백제와 일리천(一利川)에서 최후의 일전을 벌이다. 후백제의 신검이 대패하여 추풍령을 넘어 도주하다 황산에서 포위되어 투항함으로써, 후백제는 멸망하고, 왕건이 한반도의 재통일을 이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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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9년

명(明) 초대 태조(太祖)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 2년(~1398)

원(元) 11대 혜종(惠宗) 보르지긴 토곤테무르(孛兒只斤 妥懽帖睦爾) 37년(~1370) -> 북원

고려(高麗) 31대 공민왕(恭愍王) 왕기(王祺) 18년(~1374)


고려 말, 조선 초기의 문신 변계량(卞季良), 허조(許稠) 탄생하다.

북원 혜종의 2황후인 기황후(奇皇后) 사망하다.

프랑스의 왕 샤를 5세가 영국과 프랑스간에 이루어진 휴전협정인 브레티니 조약을 깨고 영국에 전쟁을 선포하다.


1370년

티무르가 중앙아시아에서 티무르 제국을 건국하다.

덴마크와 한자 동맹간에 슈트랄준트 조약을 맺어 전쟁이 종결되다.


1371년

고려의 승려 신돈(辛旽)이 역모죄로 처형되다.


1374년

최영(崔瑩)이 제주도를 공격해 원(元)의 목호 세력을 진압하다.

자제위(子弟衛) 홍륜(洪倫)과 최만생(崔萬生)이 고려 공민왕을 살해하다. 이 둘은 곧 이인임(李仁任)에게 거열형에 처해지다.


1375년

고려(高麗) 32대 우왕(禑王) 왕우(王禑) 원년(~1388)


맘루크 왕조가 시스를 함락, 킬리키아의 아르메니아 왕국을 멸망시키고 레반트를 통일하다.

백년전쟁 중인 잉글랜드와 프랑스 간에 휴전협정인 브뤼헤 조약이 맺어지다. 프랑스 내의 잉글랜드 영토는 칼레와 가스코뉴 일대에 국한되다.


1376년

고려의 장군 최영(崔瑩)이 홍산에서 왜구(倭寇)를 토벌하다. 


1380년

고려의 장수 나세(羅世)와 최무선(崔茂宣)이 지휘하는 고려의 수준이 진포에 침입한 왜선(倭船)을 대파하다.

고려의 장수 이성계(李成桂)가 남원시 운봉에서 왜구(倭寇)를 크게 무찌르다.

고려의 33대 왕 왕창(王昌) 탄생하다.


1383년

고려의 해도원수(海道元帥) 정지(鄭地)가 관음포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르다.


1389년

고려(高麗) 34대 공양왕(恭讓王) 왕요(王瑤) 원년(~1392)


고려의 장군 박위(朴葳)가 병선 백여 척을 이끌고 대마도를 쳐, 적선 3백여 척을 불태우고 잡혀갔던 고려인 백여 명을 데리고 돌아오다.

이성계(李成桂)의 차남 이방과(李芳果)가 해주에 침략한 왜구를 쳐서 승리하다.

창왕(昌王)이 이성계에 의해 폐위되고 공양왕을 즉위시키다.

이성계가 우왕을 강릉에서, 창왕을 강화에서 참수(斬首)하다.


1390년

이방과(李芳果)가 양광도와 영주에서 왜구(倭寇)를 토벌하다.

밀성군(密城郡)이 공양왕의 증조모 박씨의 친정 고향이라는 이유로 밀양부(密陽府)로 승격되다.


1391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정비(正妃) 신의왕후(神懿王后) 한씨(韓氏) 사망하다.

고려에서 과전법(科田法)을 시행하다.


1392년

조선(朝鮮) 초대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 원년(~1398)


7월에 조선 태조가 수창궁(壽昌宮)에서 공양왕에게 선양받음으로써 조선왕조가 개국하다.

11월에 예문관 학사 한상질(韓尙質)을 명에 보내, 국호를 화령(和寧)과 조선(朝鮮)중에 한 가지로 국호(國號)를 고칠 것을 청하다. 이에 명의 태조는 조선을 국호로 정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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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9년

명(明) 12대 목종(穆宗) 융경제(隆慶帝) 주재후(朱載垕) 3년(~1572)

조선(朝鮮) 14대 선조(宣祖) 이연(李昖) 2년(~1608)


11월에 선조의 생부 덕흥군과 생모 하동군부인을 각각 덕흥대원군(德興大院君) 및 하동부대부인으로 추존하다.

조선의 문인(文人) 허균(許筠) 탄생하다.


1570년

북해에서 발생한 해일이 홀란드에서 유틀란트까지 덮쳐 천 명 이상이 사망하다.

조선의 성리학자 퇴계 이황(李滉) 사망하다.


1571년

베네치아 공화국, 로마 교황, 스페인 동맹함대가, 레판토 해전에서 투르크 함대를 격파하다.


1579년

명(明) 14대 신종(神宗) 만력제(萬曆帝) 주익균(朱翊鈞) 7년(~1620)


러시아 류리코비치 왕조의 이반 뇌제가 태자를 부지깽이로 때려 3일 후 숨지게 만들고 며느리를 구타하여 유산시키다.


1582년

일본에서 혼노지의 변(本能寺の変)이 일어나,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가 사망하다. 그러나 노부나가를 자결하게 만든 아케치 미쓰히데(明智 光秀) 역시 사카모토로 도망가던 중 농부의 손에 목이 베이고 말다.


1583년

여진족 니탕개(尼湯介)가 난을 일으키나 신립(申砬)에게 진압되어 주살되다.


1587년

정해왜변(丁亥倭變)이 일어나 왜구들이 전라도 남해안을 약탈하다. 왜구를 몰아낸 뒤 전라좌수사 심암과 전라우수사 원호에게 책임을 물어 두 사람을 국문(鞠問)하다. 이 때 왜구 두목들과 조선인 앞잡이 등은 3년 후인 1590년 조선 통신사를 파견하는 조건으로 조선에 송환되어 전부 처형되다.


1589년

정여립(鄭汝立)이 모반을 꾸민다는 고변(告變)으로 인해 기축옥사(己丑獄死)가 시작되다. 이로 인해 3여 년간 동인(東人)들과 그의 가족 등 천여 명이 희생되다.


159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일본을 통일하다.


1592년

5월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여 20만 명의 왜군(倭軍)이 부산에 상륙하다.

동래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패하고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이 전사하다. 이에 왜장이 송상현을 살해한 부하를 잡아 죽이다.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이 800여 명을 이끌고 상주에서 2만의 왜군과 싸웠으나 패하다.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申砬)이 탄금대(彈琴臺)에서 왜군과 싸웠으나 크게 패하고 신립 또한 자결하였으며, 조선 육군은 궤멸되어 조선 임금 선조(宣祖)가 몽진(蒙塵)을 꾀하다.

옥포 해전에서 이순신(李舜臣)이 지휘하는 조선군이 왜군을 격파하다.

한산도(閑山島) 해전에서 이순신의 조선군이 왜군을 크게 무찌르다.(閑山島 大捷)

부산포(釜山浦) 해전에서 이순신의 조선군이 왜군을 기습하여 크게 깨트려 100여 척의 함선을 없애다. 이후 왜군이 해상 작전 수행 의지를 상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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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청(淸) 11대 덕종(德宗) 광서제(光緖帝) 애신각라재첨(愛新覺羅载湉) 13년(~1908)

조선(朝鮮) 26대 고종(高宗) 이희(李㷩) 24년(~1907)

일제(日帝) 메이지(明治) 20년(~1912)


러시아가 청나라에 조선 영토를 침범하지 않을 것임을 약속함에 따라 영국이 거문도에서 철수하다.

조선에서 경복궁(景福宮)에 전등이 켜지다.

토머스 에디슨이 영사기 특허(特許)를 취득하다.


1888년

프레데릭 더글러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다.

조선과 러시아 간 육로통상조약이 체결되다.

벨기에 스파에서 세계 최초의 미인대회가 열리다.

당시 세계 최고(最高)의 건물인 워싱턴 기념탑이 공개되다.


1889년

함경도 및 황해도에서 방곡령(防穀令)이 선포되다.

윌리엄 그레이가 주화(鑄貨) 사용 전화기로 특허를 내다.

브라질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공화국(共和國)이 되다.


1892년

제 1차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이 일어나다.


1893년

제 2차 교조신원운동(敎祖伸寃運動)이 일어나다.

뉴질랜드에서 여성에게 참정권(參政權)을 부여하다.

나치의 핵심 인물인 헤르만 괴링 탄생하다.

미국의 군인 오마 브래들리 탄생하다.

중국의 주석이었던 마오쩌둥(毛澤東) 탄생하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東學農民運動)이 일어나다.

김옥균(金玉均)이 상해에서 홍종우(洪鍾宇)에게 암살당하다.

고종이 청에 동학운동 진압을 위해 파병을 요청하자 청군이 조선에 파병되고, 그에 대항하여 일본군이 파병되다.

1차 갑오개혁(甲午改革) 및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가 설치되다.

청일전쟁(淸日戰爭)이 발발하다.

동학군이 우금치 전투에서 조선 관군 및 일본군 연합부대에 패하여 진압되다. 


1896년

조선에서 그레고리력을 채용하다.

고종이 아관파천(俄館播遷)을 감행하다.

서재필(徐載弼), 유길준(兪吉濬), 윤치호(尹致昊), 주시경(周時經) 등이 참여하여 독립신문(獨立新聞)이 창간되다.

서재필, 윤치호, 이상재(李商在), 이승만(李承晩) 등이 주도하여 독립협회(獨立協會)가 결성되다.

칙령 제 36호로 조선의 지방제도가 23부제에서 13도로 개편되다.

덕수궁(德壽宮)의 함녕전(咸寧殿)에 자석식 전화기가 설치되다.


1897년

대한제국(大韓帝國) 초대 고종(高宗) 이희(李㷩) 34년(~1907)

고종이 경운궁(慶運宮)으로 환궁(還宮)하다.

목포항을 개항하다.

국호를 조선에서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변경하여 고종이 초대 황제로 등극하다.

독일이 산동 반도의 교주 만을 무력으로 점령하다.

독립문(獨立門)이 완공되다.


1898년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사망하다.

독일이 청나라의 칭다오(青島)를 99년간 조차(租借)하고, 러시아가 다롄(大連)을 25년간 조차하며, 프랑스는 광저우(廣州)를 무력으로 점령하다.

청나라에서 변법자강(變法自疆) 운동이 시작되다.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다.

미국이 하와이를 합병하여 주로 삼다.

서태후(西太后)가 광서제(光緖帝)를 유폐시키고 섭정(攝政)을 실시하면서 변법자강운동은 실패로 돌아가다.

고종이 독립협회(獨立協會)를 해산시키다.


1900년

나이지리아가 영국의 보호령(保護領)이 되다.

열강이 청의 의화단(義和團) 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2천여명의 연합군을 파견하나 북경(北京) 진격 도중 격퇴당하다.

서태후(西太后)가 의화단에 고무된 나머지 열강에 선전포고(宣戰布告)하다. 이에 연합군은 2만 병력으로 2차 공격을 감행하다.

고종의 둘째 황자 의친왕(義親王)을 의왕에, 셋째 황자 의민태자(懿愍太子)를 영왕에 봉하다.

종로에 처음으로 민간 가로등이 설치되다.

한양과 인천 간에 시외전화(市外電話)가 개통되다. 


1902년

영일동맹(英日同盟)이 체결되다.

청나라에서 만주족(滿洲族)과 한족(漢族)간의 금혼령이 해제되다.


1903년

미국에서 최초의 재미(在美) 한인단체인 신민회(新民會)가 발족하다.

덴마크와 통상조약(通商條約)을 체결하다.

라이트 형제가 최초의 동력 비행에 성공하다.


1904년

러일전쟁이 발발하다.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가 체결되다.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가 창간되다.

1차 한일협약(韓日協約)이 체결되다.


1905년

러일전쟁에서 일제가 러시아에 승리하다. 러시아에서는 피의 일요일 사건이 벌어지다.

일제가 독도를 병합하여 다케시마로 개명하다.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이 체결되어 미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묵인하다.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가 한일 보호조약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다.

대한적십자사(大韓赤十字社)가 설립되다.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다.

황성신문(皇城新聞)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게재되다.

고종의 시종무관장인 민영환(閔泳煥)이 자결하다.


1907년

대한제국(大韓帝國) 2대 순종(純宗) 이척(李坧) 원년(~1910)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이 일어나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건의에 의해 이완용(李完用) 내각이 성립되다.

고종이 헤이그에 특사를 보냈으나 실패로 돌아가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퇴위되다. 13일 후 순종이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로 즉위하다.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 체결되다.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되다. 이에 반발하여 13도 창의군이 결성되다.

일제가 대한제국의 경찰권(警察權)을 강탈하다.

파나마가 독립하다.


1908년

퉁구스카 폭발 사건이 일어나 나무 8,000만 그루와 순록 1,500여 마리가 폐사하다.

일제에 의해 동양척식주식회사(東洋拓殖株式會社)가 설립되다.

장인환(張仁煥)과 전명운(田明雲)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스티븐스를 사살하다.


1909년

청(淸) 12대 선통제(宣統帝) 애신각라부의(愛新覺羅溥儀) 원년(~1911)


재미(在美) 한인단체가 통합하여 국민회(國民會)가 발족하다.

일제 내각이 한일합방(韓日合邦)을 결의하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이 이를 반대하다.

대한제국과 일제가 기유각서(己酉覺書)를 체결하다.

의사 안중근(安重根)이 이토 히로부미를 하얼빈에서 사살(射殺)하다.

일진회(一進會)가 한일합방(韓日合邦)을 요구하다.


1910년

8월에 한일합방(韓日合邦)이 이루어져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제강점(日帝强占) 시대가 시작되다. 순종 역시 황제에서 이왕(李王)으로 격하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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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위 연도(기원전~500년)

기타 관심사/역사 2019. 3. 18. 22:32 Posted by Lucidity1986

기원전 225년

진(秦) 37대 시황제(始皇帝) 영정(嬴政) 22년(~210)

위(衞) 49대 각(角) 5년(~209)


진의 왕분(王賁)이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을 포위하여 3개월만에 수공(水攻)으로 함락시키고, 국왕을 사로잡아 군현을 설치하다. 이로서, 위나라 멸망하다.

위나라의 멸망으로 삼진(三晋)을 모두 평정했다.

진의 몽염(蒙恬)과 이신(李信)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의 평여(平與)와 침(寢)을 각각 공격하여 초군을 격파했으나, 성보(城父)에서 초(楚)의 항연(項燕)이 반격하여 이신의 군대를 크게 무찔러 진나라 도위(都尉) 7명을 죽이다.


기원전 224년

결국 진왕이 왕전(王翦)을 다시 기용하여 60만 대군을 동원해 평여와 진(陳)을 함락시키고, 기(蘄)에서 초군을 대파하여 항연을 죽였으며, 수춘성으로 쇄도해 들어가다.


기원전 223년

진군이 초왕 부추(負芻)를 사로잡아 초나라가 멸망하다.


기원전 218년

제2차 포에니 전쟁이 시작되다. 한니발 바르키가 이끄는 카르타고 군이 티키누스 전투와 트레비아 전투에서 각각 로마군을 상대로 승리하다.


기원전 216년

한니발 바르카의 카르타고군이 칸나에 전투에서 로마군을 포위 섬멸(殲滅)하다.


기원전 214년

진의 장수 몽염(蒙恬)이 흉노(匈奴)를 토벌하다.

진군이 남진하여 현재의 광저우에 남해군 번우현(番禺县)을 설치하다.

시황제가 사령관 임효(任囂)와 조타(趙佗)에게 20만의 군사를 주어 남월을 치게 하다.


기원전 212년

시황제가 함양(咸阳)에 있는 400여 명의 유생(儒生)들을 생매장하다.(焚書坑儒)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가 약 2년 간의 공격 끝에 시라쿠사를 점령하다. 이 와중에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 역시 살해당하다.


기원전 210년

중국 최초의 황제인 시황제가 붕어(崩御)하다. 그 사후 영호해(嬴胡亥), 조고(趙高), 이사(李斯)가 공모하여 유조를 위조, 태자 영부소(嬴扶蘇)와 장군 몽염(蒙恬)에게 자결을 명하여, 그 둘이 결국 자결하고 몽씨 일족이 몰살당하다.


기원전 209년

진(秦) 38대 이세황제(二世皇帝) 영호해(嬴胡亥) 원년(~207)


진의 이세황제가 야왕현에 나라를 유지하던 위군 각(衛君 角)을 폐위시켜 위(衛)나라가 멸망하다.

진승(陳勝), 오광(吳廣)의 난이 발발하다.


기원전 208년

진장 장한(章邯)이 진승, 오광의 난을 진압하다.


기원전 207년

진나라의 간신 조고(趙高)가 이세황제를 시해(弑害)하다.

고조선(古朝鮮)이 요동 지방을 탈환하다.


기원전 205년

전한(前漢) 초대 태조(太祖) 고제(高帝) 유방(劉邦) 2년(~195)

초(楚) 초대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項羽) 2년(~202)


한군 쪽에 붙은 제후연합군 56만 명이 팽성 전투에서 항우의 3만 기병에게 대패하고 유방은 형양으로 도주하다.

그 와중에 아버지(劉太公)와 부인 여치(呂后)가 초군에 포로로 잡히다.

유방의 막료로 모략가인 진평(陳平)이 가담하는 한편, 한신(韓信)을 별동대로 파견하여 위(魏)와 조(趙)를 공격하게 하여 항우를 배후에서 견제하려고 했으며, 도적 출신의 팽월(彭越)을 시켜 초군의 배후를 덮치게 하다. 


기원전 204년

진평(陳平)이 항우군에 이간계를 써서 항우와 그 책사인 범증(范增)과 종리매(鍾離昧) 사이를 갈라놓는 데 성공히다. 범증은 군을 떠나 귀향하는 도중에 화병으로 등창이 생겨 죽다. 그러나 상황은 여전히 급박하여 장군 기신(紀信)을 유방(劉邦)으로 가장해 항우에 항복시키고 그 틈을 노려 유방 자신은 서부로 도주하고 형양은 어사대부(御史大夫) 주가(周苛)가 잠시 지켰지만 이마저 항우에게 격파되어 함락되다. 이 틈을 타 한신(韓信)이 제를 쳐 함락하고 초군 20만여 명과 용저(龍且)도 쳐부수다. 이 과정에서 분노한 제왕 전광(田廣)이 역이기(酈食其)를 기름에 튀겨 죽이다.


기원전 203년

한군과 초군이 몇 달간 광무대치를 벌이다가 8월에 화의를 성사하고 병립(竝立)을 선언하다.

그러나 유방은 되돌아가는 초군을 습격하고 한신(韓信), 팽월(彭越)에게도 참가를 요청하나 은상을 약속받지 못하자 불응하다. 장량(張良)이 이를 지적하자 유방은 과감히 큰 봉토를 은상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이에 팽월, 한신이 합류하니 초군은 불리한 지경에 처하다.


기원전 202년

초한전쟁 - 다른 제후들도 한군에 합류하여 결국 해하(垓下)까지 항우(項羽)를 밀어붙이고, 초군은 완전히 붕괴하여 항우가 소수 병력으로 포위망을 돌파하나 강동으로 달아나는 대신 오강(烏江) 기슭에서 자결하다.

유방이 노(魯)의 최종 항복을 받아냄으로써 천하를 일통(一統)하다. 그 후 신하들의 추대를 받아 황제에 등극하여 통일국가로서의 전한 왕조가 공식 출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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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0년

전한(前漢) 8대 소제(昭帝) 유불릉(劉弗陵) 7년(~74)


프톨레마이오스 12세가 이집트의 파라오가 되다.

퀸투스 세르토리우스가 가이우스 아우렐리우스 코타의 로마 함대를 격퇴하고 바이티스 강에서 루키우스 푸피디우스를 격퇴하면서 이베리아를 장악하고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아시아 속주 총독 마르쿠스 미누키우스 테르무스 휘하에서 군복무를 시작하다.


기원전 79년

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가 스스로 독재관을 사임하고 로마 정계에서 은퇴하다.

전직 법무관 마르쿠스 도미티우스 칼비누스가 아나스 강 전투에서 퀸투스 세르토리우스에게 전사하다.


기원전 78년

퀸투스 세르토리우스가 메텔루스 피우스를 격퇴하다.

에트루리아인들이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다.


기원전 75년

원고구려족 등 토착민의 공격으로 현도군(玄菟郡)을 압록강 유역에서 밀어내, 치소를 혼하(渾河) 상류의 흥경(興京) 일대로 옮기다.


기원전 74년

전한 8대 황제 소제가 죽은 뒤 소제의 대신인 곽광은 창읍애왕의 아들 유하(廢帝)를 황제로 추대하다. 하지만 유하는 방탕하여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였고 이에 곽광은 전연년, 장안세 등과 공모하여 유하를 곧바로 폐위시키다. 그리고 무제의 태자였던 유거의 손자 유병이(宣帝)를 궁으로 불러들여 새 황제로 삼다.


기원전 73년

전한(前漢) 10대 선제(宣帝) 유순(劉詢) 2년(~49)


로마에서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70여명의 동료와 함께 카푸아의 검투사 양성소를 탈출하다. 베수비우스 산에서 법무관 글라베르를 격퇴한 스파르타쿠스는 노예들을 규합하여 대규모 군대를 조직한 뒤 반란을 일으키다. 이들은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 위치한 로마의 몇몇 도시를 공격하다.

테네도스 근처에서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가 이끄는 로마 함대가 폰토스 함대를 상대로 승리하다.


기원전 71년

로마에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이 마르쿠스 리키니우스 크라수스에게 진압당하다. 이후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에 가담한 6천여명의 노예들은 이피아 가도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지다.

로마의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크레티쿠스가 해적과 연합한 크레타인들에게 패하다.


기원전 69년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즉위 기록을 역산하면 이 해에 신라(斯盧國)의 초대 거서간 박혁거세(朴赫居世)가 태어난다.


기원전 66년

동명성왕(東明聖王)의 부인이자 온조왕(溫祚王)의 어머니인 소서노(召西奴) 탄생하다.


기원전 60년

흉노(匈奴)의 일축왕(日逐王)이 전한에 투항하다.

전한의 서역도호부(西域都護府)가 창설되다.


기원전 58년

고구려의 초대 태왕(太王) 동명성왕(東明聖王) 고주몽(高朱蒙) 탄생하다.


기원전 57년

4월에 13세의 박혁거세가 즉위하여 거서간(居西干)이라 일컫고 나라 이름을 서라벌(徐羅伐)이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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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년

후한(後漢) 14대 헌제(獻帝) 유협(劉協) 9년(~220)

신라(新羅) 10대 내해 이사금(奈解 泥師今) 석내해(昔奈解) 2년(~230)

고구려(高句麗) 10대 산상왕(山上王) 고연우(高延優) 원년(~227)

백제(百濟) 5대 초고왕(肖古王) 부여초고(扶餘肖古) 32년(~214)


1월에 내해 이사금이 시조묘를 배알(拜謁)하다.

유요가 향년 42세에 병사하고 손책(孫策)이 강동을 평정하다.

완 전투에서 장수가 조조(曹操)를 격퇴하다. 이 과정에서 전위(典韋)와 조앙(曹昻)이 조조를 지키고 사망하다.

원술이 황제를 참칭(僭稱)하고 중(仲)을 건국하다.

서주 대전역에서 여포가 원술에게 승리하였으며, 손책이 또한 원술과 결별하고 자립하다. 수춘 전투에서 조조가 원술에게 승리하다.


198년

4월에 신라 시조묘 앞의 넘어진 버드나무가 스스로 일어나다. 5월에 서쪽에 큰 물이 들어 물난리를 만난 주현(州縣)에 1년간 조세(租稅)와 징발(徵發)을 면해 주다. 7월 관리를 보내 위무(慰撫)하고 위문(慰問)하다.

양 전투에서 장수가 조조(曹操)에게 승리하다.

소패 전투에서 여포 휘하의 고순이 조조 휘하의 하후돈(夏侯惇)에게 승리하다.

환 전투에서 손책(孫策)이 유훈에게 승리하다. 


199년

7월에 백제가 신라의 변경을 침범하다.

서주 공방전 하비 전투에서 조조(曹操)가 여포(呂布)에게 승리하여, 장료는 투항하고 여포, 진궁, 고순은 참수(斬首)되다.

역경 전투에서 원소(袁紹)가 공손찬에게 승리하여, 공손찬이 식솔(食率)을 스스로 베고 자결하다.

헌제가 동승(董承)에게 조조 주살의 밀서를 주다.

유비(劉備)가 허도를 탈출하여 서주에서 자립하고 원소와 동맹을 맺다.

손책(孫策)이 주유와 더불어 노강의 환성을 함락시키고 각각 대교(大橋), 소교(小嬌)를 아내로 삼다.

서주 전투에서 유비가 원술(袁術)에게 승리하여 원술이 원소에게 의탁하러 가는 도중 병사하다.

여강 전투에서 손책이 유훈에게 승리하여, 유훈이 조조에게 투항하다.


202년

촉한의 무장 강유(姜維)가 탄생하다.

원소(袁紹)가 병사하다.

여양 전투에서 조조와 원상, 원담이 싸웠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하다.

박망 전투에서 유비가 조조 휘하의 하후돈(夏侯惇)에게 승리하다.


203년

여양 전투에서 조조가 원상, 원담에게 승리하다.

위군 전투에서 원상이 조조에게 승리하다.

원상, 원담간에 내분이 일어나 원담이 조조에게 투항하다.

강하 전투에서 유표(劉表) 휘하의 황조(黃祖)와 손권(孫權)이 승패를 가리지 못하다.

시상 전투에서 손권 휘하의 서성(徐盛)이 유표 휘하의 황역에게 승리하다.


204년

삼국시대의 군벌 공손강(公孫康)에 의해 대방군(帶方郡)이 설치되다.

업 전투에서 조조가 원상(袁尙)에게 승리하고 기주(冀州)를 평정하다.

조비(曹丕)가 원희의 아내인 문소황후(文昭皇后)를 아내로 맞이하다.


206년

호관 전투에서 조조가 고간(高幹)에게 승리하여 병주(幷州)를 평정하다.

동해 전투에서 우금이 창희에게 승리하다.

유비가 삼고초려(三顧草廬)로 제갈량(諸葛亮)을 등용하다.(연의에서는 207년)

오의 장군 태사자(太史慈)가 남쪽의 반란을 토벌하러 갔다가 풍토병에 사망하다.


207년

1월에 신라에서 왕자 이음(利音 또는 奈音)에게 벼슬을 내려 이벌찬(伊伐湌)으로 삼고, 지내외병마사(知内外兵馬事)를 겸하게 하다.

촉한 2대 황제 후주(後主) 유선(劉禪) 탄생하다.

강하 전투에서 유표(劉表) 휘하의 황조와 손권이 승패를 가리지 못하다.

유성 전투에서 조조가 원씨가문을 지원한 오환(烏丸)의 답돈(蹋頓)에게 승리하다.

이후 공손강(公孫康)이 원상, 원희를 참수하여 그 목을 조조에게 보냄으로써 원씨 가문은 멸족되다.

제갈량(諸葛亮)이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를 진언하다.

조조가 남정(南征)을 시작하다.

신야 전투에서 유비가 조조 휘하의 조인(曹仁)에게 승리하다.


208년

2월에 내해 이사금이 군읍(郡邑)을 순행(巡行)하고 열흘만에 돌아오다. 4월에 왜인(倭人)이 신라의 경계를 침범하니 이벌찬(伊伐湌) 이음(利音)이 군대를 끌고 이를 막다.

유표(劉表)가 병사하고 그 뒤를 이은 유종(劉琮)이 조조에 항복함으로써 형주(荆州)가 조조에게 넘어가다.

당양 전투에서 조조가 유비에게 승리하여, 유비가 하구로 달아나다. 장비(張飛)가 장판파에서 길을 막았으며, 또한 조운(趙雲)이 유비의 아들(劉禪)을 구하다.

조조가 강릉을 점령하고 형주의 내정을 재편하다. 또한 가후(賈詡)가 장기전을 제안했으나 조조가 듣지 않다.

제갈량(諸葛亮)의 유세로 인해 손권(孫權)과 유비의 연합이 결성되다.

적벽 전투에서 손권, 유비 연합군이 조조에게 대승하여 조조의 세력이 약화되다.


210년

신라에서 봄과 여름에 가뭄이 들자 관리를 보내어 군읍의 감옥에 있는 죄수를 조사하여, 두 가지 사형(死刑)에 해당하는 죄를 제외하고는 나머지는 모두 사면(赦免)하다.

오의 주유(周瑜)가 서천을 정벌하러 떠나는 도중 병사하다.

방통(龐統)이 유비에게 출사(出仕)하다.

조조가 업에 동작대(銅雀臺)를 건설하다.


211년

1월에 신라에서 훤견(萱堅)을 이찬(伊湌)으로 삼고, 윤종(允宗)을 일길찬(一吉湌)으로 삼다.

조조가 한중(漢中)의 장로(張魯) 토벌을 시도하나, 이를 양주(凉州) 침공으로 착각한 관중 군벌들이 반발하여 마초(馬超), 한수(韓遂)의 거병으로 이어지다.

유비가 촉에 들어가다.

손권이 본거지를 오(吳)에서 말릉(秣陵)으로 옮기고 건업(建業)으로 개명하다.


212년

3월에 가야(伽倻)에서 신라에 왕자를 보내 인질로 삼다. 5월에 큰비가 민가에 피해를 입히다.

동관 전투와 위수 전투에서 조조가 마초, 한수에게 승리하다. 가후(賈詡)의 이간책으로 마초와 한수 사이가 틀어져, 조조가 옹주(雍州)를 평정하다.

조조의 참모 순욱(荀彧) 사망하다.

유비와 유장(劉璋)이 반목하여 백수 전투에서 유비가 유장 휘하의 양회, 고패에게 승리하다.

유비가 곽준(霍峻)에게 가맹관을 맡기고, 유장 휘하의 유괴(劉璝)에게 승리하여 부성을 취하다. 면죽관 전투에서는 승패를 가리지 못하다.


213년

조조가 위공(魏公)에 등극하다.

유수구(濡須口) 전투에서 조조와 손권이 승패를 가리지 못하다.

유비가 유장 휘하의 이엄(李嚴)에게 승리함으로써 면죽관을 취하고, 유순(劉循)에게 승리함으로써 낙성을 취하다. 한편 가맹관 전투에서는 곽준(霍峻)이 유장 휘하의 상존에게 승리하고 주살(誅殺)하다.

마초(馬超)가 다시 거병하여 기성을 함락시키다. 이에 허도에 있던 마씨 일가가 연좌제로 처형되다.


214년

백제(百濟) 6대 구수왕(仇首王) 부여구수(扶餘仇首) 원년(~234)


3월에 신라에서 큰 바람이 나무를 꺾다. 7월에 백제가 신라 서쪽의 요차성(腰車城)을 쳐 성주 설부(薛夫)를 죽이다. 이에 내해 이사금이 이음(利音)에게 명해 6천명을 이끌고 백제를 쳐서 사현성(沙峴城)을 파괴하다.

기 전투에서 조조 휘하의 하후연(夏侯淵)이 마초에게 승리하여 마초가 장로(張魯)에게 투항하다.

흥수 전투에서 하후연이 한수에게 승리하다.

낙(연의의 낙봉파) 전투에서 유비가 유순에게 승리하다. 이 때 방통(龐統)이 전사하고, 마초가 유비에게 투항하다.

환 전투에서 손권이 주광(朱光)에게 승리하다.

유비가 성도(成都)를 함락하고 익주목(益州牧)이 되어 익주 전역을 장악하다.

자칭 왕이라 일컫던 평한왕 송건(宋建)을 하후연이 진압해서 모두 참하다.


215년

조조가 강, 저의 정벌을 시작하여, 무도 전투에서 조조 휘하의 장합(張合)이 저족의 두무에게 승리하다. 조조가 하지 전투에서 다시 저족의 군대에게 승리하다. 한수(韓遂)가 서량의 장수인 국연(麴演)과 장석(蔣石)에게 살해되다.

양평관 전투에서 조조가 장로군에게 승리하다. 장로는 파서(巴西)로 후퇴하다.

유비와 손권이 형주를 가지고 다투기 시작하여, 손권이 형주 남부의 3군에 태수를 파견하나 관우(關羽)가 이를 쫓아내다. 이에 손권이 육구에 주둔하고, 노숙(魯肅)릏 파구에 주둔시킨 다음 여몽(呂蒙)이 공격하여 장사, 계양, 영릉을 탈취하다.

관우가 3군을 다시 탈취하기 위해 익양에 주둔하다.

이 때 조조가 한중을 쳐 장로가 파서로 후퇴했다는 소식을 듣자 유비가 강하, 장사, 계양 3군을 영구히 손권에게 양도하고, 손권은 영릉을 유비에게 반환하여 영토분쟁을 끝내고 화친하다.

한중 전투에서 조조가 장로에게 승리하여 장로가 결국 투항하고 방덕(龐德)이 조조 휘하로 들어가다.

2차 합비 공방전에서 장료(張遼)가 손권의 대군을 막아내다.


217년

2차 유수구(濡須口) 전투에서도 조조와 손권이 승패를 가리지 못하여, 강화를 맺다.

가후(賈詡)의 헌책을 받아들인 조조가 당시의 장남 조비(曹丕)를 태자로 임명하다.

노숙(魯肅)과 능통(凌統)이 사망하다.


218년

7월에 신라의 무기고에서 병사의 장비가 스스로 나오다. 백제군이 신라의 장산성(獐山城)을 포위하자, 내해 이사금이 친히 병력을 이끌고 이들을 쳐서 내쫓다.

허(許)에 화재가 발생하다. 경기(耿紀), 위황(韋晃), 김의(金禕), 길본(吉本) 등이 모의하여 조조를 살해하려 했으나 왕필(王弼)등의 방어로 실패하고, 이들의 삼족이 모두 죽다.

무도 전투에서 조홍(曹洪)이 유비군의 오란(吳蘭)에게 승리하다.

양평관 전투에서 하후연(夏侯淵)과 유비가 승패를 가리지 못하다.

오환(烏丸)의 후음(侯音)이 조조에게 반기를 들어 난을 일으키자, 조조의 차남 조창(曹彰)이 진압하다.


219년

한중 공방전에서 유비가 최종 승리하고, 유비가 마침내 한중왕(漢中王)에 등극하다.

이 과정에서 조조군의 하후연(夏侯淵)이 전사하다.

형주 공방전에서 관우(關羽)가 우금(于禁)이 이끄는 7군을 수몰시키다. 우금은 투항하고 방덕(龐德)은 끝내 투항하지 않아 참수되다.

허도(許都) 근처에 관우에게 호응하는 세력들이 조조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하자 조조가 천도(遷都)를 하고자 하나 사마의(司馬懿)등이 말려 그만두다.

조인(曹仁)이 포위상황에서 항복을 고려했으나 만총(滿寵)의 설득에 의해 수성을 계속하다. 이내 서황(徐晃)의 지원군이 관우군을 패퇴시키다.

그 사이 여몽(呂蒙)의 계략에 의해 미방(未方)과 부사인(傅士仁)이 오에 항복하고 형주성이 함락되다.

맥성 전투에서 여몽이 관우군에게 승리하여 관우가 손권(孫權)에 의해 참수(斬首)되고, 그 목이 조조에게 보내지다. 


220년

위(魏) 초대 고조(高祖) 문제(文帝) 조비(曹丕) 원년(~226)


3월에 신라의 이벌찬(伊伐湌) 이음(利音)이 사망하다. 충훤(忠萱)을 이벌찬으로 삼고 지병마사(知兵馬事)를 겸하게 하다. 7월에 양산(楊山)서쪽에서 크게 사열하다.

2월에 조조(曹操)가 사망하고 조비(曹丕)가 그 뒤를 이어 승상 및 위왕(魏王)의 자리를 계승하다.

만총(滿寵)이 손권의 신야 공격을 막아내다.

유비군의 맹달(孟達)과 신탐(申耽)이 조비에게 투항함으로써 상용의 3군 6현이 넘어가다. 또한 유봉(劉封)이 숙청당하다.

10월에 헌제(獻帝)가 조비에게 선양함으로써 후한(後漢)이 완전히 멸망하고, 낙양을 수도로 삼았으며 위(曹魏)를 건국하다. 황초(黃初)로 개원했으나 손권과 유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후한의 건안(建安)연호를 계속 사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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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년

위(魏) 3대 소제(少帝) 조방(曹芳) 원년(~254)

촉(蜀) 2대 후주(後主) 유선(劉禪) 18년(~263)

오(吳) 초대 대제(大帝) 손권(孫權) 19년(~252)

신라(新羅) 11대 조분 이사금(助賁 泥師今) 석조분(昔助賁) 11년(~247)

고구려(高句麗) 11대 동천왕(東川王) 고우위거(高憂位居) 14년(~248)

백제(百濟) 8대 고이왕(古爾王) 부여고이(扶餘古尒) 7년(~286)


백제가 신라를 침공하다.

조방이 뒤늦게 개원하고, 조상(曹爽)과 사마의(司馬懿)가 후사를 맡다.

청주자사 왕릉이 정동장군(征東將軍) 가절을 받고 도독양주제군사에 봉해지다.

한가군(漢嘉郡)의 만족(蠻族)을 정벌하다가 상총이 전사하다.

남만(南蠻)의 반역을 장억(張嶷)이 토벌하다.


241년

오의 태자 손등이 향년 32세로 사망함에 따라 손권의 셋째 아들 손화가 태자가 되다.

오가 세 방향으로 위를 공격하다. 주연군은 번성을 공격하여 아들 주이와 여거 등이 외성 공략에 성공하나 위의 호질과 사마의(司馬懿)가 이들을 격퇴하다. 장휴, 고승이 수춘을 공격하나 위군의 진격만 저지하다. 전종이 회남의 제방 작피를 공격하나 위의 왕릉, 손례와 대치하다 서로 물러나다.

제갈근이 향년 67세로 사망하여 셋째 제갈융이 직위를 계승하다. 


242년

신라에서 가을에 대풍년(大豊年)이 들고, 고타군(古陁郡)이 가화(嘉禾)를 진상하다.

고구려의 동천왕이 서안평을 공격하나 실패하다.

오의 중서령 감택이 태사대부를 겸하여 태자 손화와 노왕(魯王) 손패(孫覇)를 가르치다. 


245년

육손(陸遜)이 후계 갈등에 대한 손권의 질책으로 분사(憤死)하여 육항이 스무살의 나이로 뒤를 잇다.

마무의 손권 암살이 실패하다.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를 침입하자 동천왕이 북옥저(北沃沮)로 파천(播遷)하다.


246년

10월에 신라 동남쪽에 흰 기운이 있었는데 마치 한 필의 명주와도 같았다고 전해지다. 11월에 경도(京都)에서 지진이 나다.

촉의 장완(蔣琬)이 사망하고 비의와 강유(姜維)가 녹상서사 등을 승계하다. 비의의 상서령의 자리는 동윤(董允)에게 넘어가다.

오의 승상에 보즐(步騭)이 임명되다.

동윤이 과로로 사망하고, 시중은 진지가 승계하다.

관구검(毌丘儉)이 고구려의 밀우(密友), 유유(紐由)의 활약으로 후퇴하다. 이때 흩어진 관구검의 우군 말갈(靺鞨)은 옥저(沃沮)에 남다.


247년

신라(新羅) 12대 첨해 이사금(沾解 泥師今) 석첨해(昔沾解) 원년(~261)


7월에 첨해 이사금이 시조묘(始祖廟)를 뵙고 아버지 골정(昔骨正)을 세신 갈문왕(世神 葛文王)에 봉하다.

오의 승상 보즐이 사망하고 아들 보협과 보천이 계승하다.

위의 곽회(郭淮)가 강족과 흉노(匈奴)의 침공을 격퇴하다.

조상(曹爽)이 전권을 장악하여 사마의(司馬懿)가 일시적으로 은퇴하다.

강유(姜維)가 위장군으로 승진하여 비의와 함께 녹상서사가 되다.


249년

고구려(高句麗) 12대 중천왕(中川王) 고연불(高然弗) 2년(~270)


4월에 왜인(倭人)이 신라의 서불한(舒弗邯=伊伐湌) 석우로(昔于老)를 죽이다. 7월에 궁 남쪽에 남당(南堂)을 짓고, 양부(良夫)를 이찬(伊湌)으로 삼다.

사마의(司馬懿)가 고평릉 사변을 일으켜 조상(曹爽)과 그 일가를 죽이고 정권을 장악하다.

촉의 위장군 강유의 첫 북벌이 실패로 돌아가다. 국산에 축성하고 구안(苟安), 이흠으로 하여금 수성케 하였으나 곽회(郭淮)및 진태의 명을 받은 등애(鄧艾)가 수로를 차단하여 촉군이 항복하다. 이에 강유는 요화(廖化)를 보내 등애를 치게 했으나 등애가 먼저 성에 들어가 조성을 공격한 강유의 군대를 물리치다. 이 공으로 등애가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지다.

오의 좌대사마(左大司馬) 주연(朱恭)이 사망하고 양자 주적이 계승하다.

촉장 마충이 성도에서 병사하다.


250년

강유(姜維)가 위의 서평(西平)을 공격하여 중랑장 곽순(郭循)이 투항하자 그를 좌장군에 임명하다.

오의 후계 갈등으로 노왕 손패가 자결을 명받고 태자인 손화는 그 자리를 잃고 남양왕이 돼서 장사로 귀양가다. 그 후에 손량(孫亮)이 태자가 되다.

위의 문흠(文欽)이 오에 거짓 투항하나 주이(朱異)가 이를 간파하여 격퇴시키다.

위의 정남장군(征南將軍) 왕창(王昶)이 오를 공격하여 주적(주연(朱恭)의 양자)을 패배시키나 강릉 함락은 실패로 돌아가다. 


251년

1월에 신라가 남당(南堂)에서 청정(聽政)을 시작하다. 한기부(漢祇部) 사람 부도(夫道)를 불러 아찬(阿飡)으로 삼고, 물장고(物藏庫)로서 사무를 맡기다.

위의 왕릉(王凌-王允의 조카)의 역모가 발각되다. 왕릉은 낙양으로 가던 도중 음독자살(飮毒自殺)했으나 공모자인 영호우(令狐愚)와 함께 부관참시(剖棺斬屍)되고, 위의 조정에서는 두 집안 모두 삼족을 멸하다.

사마의가 사망하고 사마사(司馬師)가 계승하여 대장군(大將軍)에 오르다.

손권이 태원(太元)으로 개원하다. 


253년

오(吳) 2대 폐제(廢帝) 손량(孫亮) 2년(~258)


4월에 용(龍)이 신라 궁궐 동쪽 못(淵)에 나타나다. 금성 남쪽의 넘어진 버드나무가 스스로 일어나다. 5월부터 7월까지 비가 내리지 않아 시조묘(始祖廟)와 명산(名山)에 빌고 제사지내니 비로소 내리다. 굶주린 해여서 도적이 많았다.

9월에 금관가야(金官伽倻)에서 마품왕이 즉위하다.

촉에서 신년 연회 중에 비의(費禕)가 곽순(郭循)에게 암살되다. 강유(姜維)가 석영을 나와 남안을 포위했으나, 위의 옹주자사 진태(陳泰)가 이르자 군량이 다 떨어져 퇴각하다.

제갈각(諸葛恪)이 승전에 교만하여 20만 대군으로 위의 신성을 공략하나 관구검(毌丘儉)과 장특(張特)에 막혀 실패로 돌아가다. 패전 이후로도 여전히 서주 및 청주로의 진군을 꾀하자 손준(孫峻)등이 황제 손량과 모의하여 제갈각 암살을 계획하여 연회 중에 제갈각이 살해당했으며, 또한 그의 삼족을 멸하다.

손준에 의해 폐태자 손화(孫和)가 사사되다.  


254년

위(魏) 4대 폐제(廢帝) 고귀향공(高貴鄕公) 조모(曹髦) 원년(~260)


강유가 3차 북벌을 단행하다. 농서(隴西)로 진군하여 적도현 이간(李簡)의 항복을 받고 양무(襄武)를 포위하여 정촉호군(征蜀護軍)을 궤멸시키고 대장 서질(徐質)을 참하다.

촉의 노장 장억(張嶷)이 서질에게 전사하다.

서강왕 미당(迷當)이 때를 맞추어 남안으로 출진했으나 진태가 거짓 항복 후 곽회(郭淮)와 협공하여 강족의 군대를 궤멸시키고 기세를 몰아 철롱산의 포위를 풀다.

10월에 위 황제 조방이 사마사(司馬師)에 의해 폐위 후 제왕(齊王)으로 강등되고, 명제(曹叡)의 조카인 조모가 13살의 나이로 즉위하다. 


255년


9월에 백제가 신라를 침공하자 일벌찬(一伐湌) 익종(翊宗)이 귀곡(槐谷) 서쪽에서 맞아 싸웠으나 패사하다.

10월에 백제가 신라의 봉산성(烽山城)을 공격했으나 함락시키지 못하다.

사마사의 전횡에 분개한 관구검(毌丘儉)과 문흠(文欽)이 수춘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연주자사 등애(鄧艾)를 공격한 문흠이 패배하다.

거기장군 곽회(郭淮)가 사망하다.

사마사의 눈밑 혹이 악화되어 진중에서 병사하고, 오의 손준(孫峻)이 문흠의 응원군으로 가세하다. 문흠과 문앙이 오로 귀순하다.

관구검은 농성 도중 달아나다 활에 맞아 사망하고, 반란군이 와해되다. 아들 관구전 등 삼족이 멸해지다. 이 때를 틈탄 손준의 북벌이 실패로 돌아가다.

강유가 대장군(大將軍)에 봉해지고, 4차 북벌을 단행하여 하후패(夏侯覇), 장익(張翼)과 함께 조수에서 왕경(王經)을 크게 깨부수고 적도(狄道)를 포위하나 진태 및 등애의 구원군에 의해 후퇴하다.


256년

3월에 신라 동쪽 바다에서 큰 물고기 세 마리가 나왔는데, 길이가 세 길이고, 높이가 한 길 두 자였다. 10월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강유가 5차 북벌을 단행하여 단곡(段谷)을 치나 적도(狄道), 농서(隴西), 남안(南安), 기산(祁山)을 미리 방비해둔 등애의 승리로 끝나다. 단곡전투에서 등애가 강유에게 크게 승리하였으며, 한중(漢中)의 도독이었던 호제(湖濟)가 지원군을 보내지 않음으로써 강유가 20명의 부장을 잃다.

강유는 패전 후 스스로의 지위를 후장군으로 강등시켰으며, 이 전투에서 하후패(夏侯覇)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다.


257년

강유가 6차 북벌을 단행하여 낙곡(駱谷)을 거쳐 장성을 공격하나 등애(鄧艾)가 응하지 않자 후퇴하다. 또한 다시 대장군직에 오르다.

제갈탄(諸葛誕)이 수춘(壽春)에서 반란을 일으키다. 이에 오의 손침(孫綝)이 문흠(文欽), 전단(全端), 전역(全懌), 당자(唐咨) 등의 지원군을 보내나 수춘 전투에서 위의 왕기(王基)가 전단에게 승리하다.

사마소(司馬昭)가 종회(鍾會)와 함께 수춘으로 진군하다. 시상(柴桑)의 육항(陸抗)이 위군을 격파하다.


258년

오(吳) 3대 경제(景帝) 손휴(孫休) 원년(~264)


오 황제 손량(孫亮)이 손침(孫綝)을 제거하려다 실패하여 폐위되고, 손권의 육남 손휴가 즉위하다.

촉황제 유선이 경요로 개원하다. 촉의 권신 진지 사망하다.

수춘이 결국 함락되고 제갈탄(諸葛誕)이 전사하다. 사마소(司馬昭)가 이 공로로 구석(九錫)을 받고 진국공(晉國公)에 등극하다.

손휴에 의해 손침이 연회 중에 살해되고, 제갈각(諸葛恪), 등윤(滕胤), 여거(呂據)가 사면되다.


260년

위(魏) 5대 원제(元帝) 조환(曹奐) 원년(~265)


고이왕이 백제의 관직을 정비하다. 여름에 큰 비가 와서 신라의 산이 40여 군데 무너지다.

위 황제 조모가 역적 사마소를 주살하려 했으나 시중 왕침(王沈), 산기상시(散騎尙侍) 왕업(王業)이 배신하고 사마소에게 일러바쳐 실패로 돌아가고 조모가 백주대낮에 시해당하다.

조조의 9남 조우(曹宇)의 아들 조환이 황제로 즉위하다.

복양흥(濮陽興)이 오의 승상이 되다.


261년

신라에서 달벌성(達伐城)을 쌓고 나마극종(奈麻克宗)을 성주로 삼다. 3월에 백제가 사신을 보내 화친을 청하나 허락하지 않다.

촉 황제 유선이 229년에 사망한 조운(趙雲)의 관직을 대장군(大將軍)으로, 시호를 순평후(順平侯)로 추증하다.

오의 설후(薛珝)가 손침의 주살을 축하하는 촉의 답례 사신으로 성도에 다녀오다. 그 후에 손휴가 촉의 정치에 대해 묻자 촉의 환관 황호(黃皓)가 망국을 일으키리라 예언하다.(燕雀處堂)


262년

신라(新羅) 13대 미추 이사금(味鄒 泥師今) 김미추(金味鄒) 원년(~284)


3월에 신라에서 용(龍)이 궁궐 동쪽 못(淵)에 나타나다. 7월에 화재가 발생하여 금성의 서문이 불타고 민가 300여 구(區)를 태우다.

강유가 마지막 북벌을 단행하나 조양 전투에서 위의 등애(鄧艾)에게 패하다.

사마소(司馬昭)가 촉 정벌 계획을 세우다.


263년

1월에 신라에서 이찬(伊湌) 양부(良夫)에게 벼슬을 내려 서불한(伊伐湌, 후기에는 角干)으로 삼고, 지내외병마사(知内外兵馬事)를 겸하게 하다. 2월에 왕이 친히 국조묘(國祖廟)에 제사지내고 대사면령을 내리다. 부친 김구도(金仇道)를 추봉하여 갈문왕(葛文王)으로 삼다.

촉황제 유선(劉禪)이 염흥(炎興)으로 개원하다.

등애, 종회, 제갈서가 이끄는 위군이 촉을 대대적으로 침공하다. 오황제 손휴가 촉을 구원하기 위해 정봉(丁奉)을 보내다.

검각 전투에서 강유와 종회가 승패를 가리지 못하다. 그 사이 등애가 무도, 음평 샛길로 진군하여 면죽관 전투에서 제갈첨(諸葛瞻:諸葛亮의 아들)에게 승리하다. 이로 인해 제갈첨과 그 아들 제갈상(諸葛常)이 전사하다.

위군에 성도에 이르자 유선이 투항하여 촉이 멸망하고, 강유도 이 소식을 듣고 투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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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기타 관심사/기타 잡글(신문 출처) 2019. 3. 6. 01:53 Posted by Lucidity1986

처칠 옹이 서거할 때 사람들은 과연 처칠 다운 죽음이라고 경탄했다. 10여 일간 죽음과 싸운 것이 현대 과학으로서는 도저히 해석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박사는 처칠보다 더 고령이면서도 처칠보다 몇십 배나 더 죽음과 싸우다 숨졌다. 이박사 앞에서는 죽음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박사는 반수(半睡)상태로 몇 년을 살았다.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아마 이박사의 반수야 말로 현대과학으로 해석이 안된다고 해야할것 같다. 물론 이박사의 타고난 정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의사 말에 의하면 이박사의 반수는 인삼을 먹은 때문이라고 한다. 이박사가 대통령으로 권세가 하늘을 찌를 때 많은 아첨배들이 산삼을 갖다 바쳤다.


심산유곡에서 수백년 된 산삼을 캐다 바친일이 여러번 있었다. 오래 살기를 원한 이박사는 불로장수 한다는 그 산삼을 달여서 먹곤 했다. 그러나 노인들에게는 인삼을 약으로 안 쓴다는 말이 있다. 돌아갈 때 고통이 많이 때문이라 한다. 노인은 죽을 때 깨끗하게 숨져야 한다. 죽는것도 아니고 사는것도 아니고 이박사 처럼 반수를 계속한다면 가난한 서민 가정에서는 불효자식 소리 듣기 알맞다.


이박사가 반수생활을 오래한것도 기실 산삼의 힘인지도 모른다. 젊어서 옥고를 6,7연간이나 치렀고 이국에서 고산도 많이 겼었으련만 90장수를 한 것을 보니 이박사란 과연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박사는 묘한 자력 같은 힘을 풍기고 있다고 리처드 아렌 인가가 어느 글에 쓴 것을 보았다. 이박사를 대하면 자신도 모르게 끌린다는 것이다. 


이박사가 웃으면 춘풍이 이는듯 했고 한번 노하면 산천이 떠는듯 했다고 한다. 동양식 과장이기는 하나 외국인의 말이고 보니 전혀 거짓만도 아닌 듯 하다. 자유당이란 이박사의 사당(私黨)이나 다름없었다. 이박사 없이는 자유당이란 생각할 수 없다. 자유당원이 못나서가 아니다. 이박사의 개성이 그만큼 뛰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경향신문, 1965년 7월 20일. 이승만 서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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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필 사망..

기타 관심사/역사 2018. 6. 23. 14:40 Posted by Lucidity1986


오늘 아침 향년 92세로 별세


이로서 삼김(三金)이 전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2009년)

김영삼 전 대통령(2015년)

김종필 전 국무총리(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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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계 최고의 탱커 목성

기타 관심사/천문 2018. 3. 23. 01:03 Posted by Lucidity1986


엄청난 중력으로 수많은 소행성을 붙잡아 주고



가끔 혜성에 대신 맞아주기도 하는


내행성들의 영원한 형님 

목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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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箕子朝鮮)의 왕통

기타 관심사/역사 2017. 5. 3. 04:31 Posted by Lucidity1986

출처 : 위키백과


대수

시호 및 묘호

이름

재위기간(기원전)

1

태조문성왕(太祖文聖王)

자서여(子胥餘) 또는 자수유(子須臾)

1126~1082

2

장혜왕(莊惠王)

자송(子松)

1082~1057

3

경효왕(敬孝王)

자순(子詢 또는 子洵)

1057~1030

4

공정왕(恭貞王)

자백(子伯)

1030~1000

5

문무왕(文武王)

자춘(子椿)

1000~972

6

태원왕(太原王)

자예(子禮)

972~968

7

경창왕(景昌王)

자장(子莊)

968~957

8

흥평왕(興平王)

자착(子捉)

957~943

9

철위왕(哲威王)

자조(子調)

943~925

10

선혜왕(宣惠王)

자색(子索)

925~896

11

의양왕(誼襄王)

자사(子師)

896~843

12

문혜왕(文惠王)

자염(子炎)

843~793

13

성덕왕(盛德王)

자월(子越)

793~778

14

도회왕(悼懷王)

자직(子職)

778~776

15

문열왕(文烈王)

자우(子優)

776~761

16

창국왕(昌國王)

자목(子睦)

761~748

17

무성왕(武成王)

자평(子平)

748~722

18

정경왕(貞敬王)

자궐(子闕)

722~703

19

낙성왕(樂成王)

자회(子懷)

703~675

20

효종왕(孝宗王)

자존(子存)

675~658

21

천로왕(天老王)

자효(子孝)

658~634

22

수도왕(修道王)

자립(子立) 또는 자양(子襄)

634~615

23

휘양왕(徽襄王)

자통(子通) 또는 자이(子邇)

615~594

24

봉일왕(奉日王)

자참(子參)

594~578

25

덕창왕(德昌王)

자근(子僅)

578~560

26

수성왕(壽聖王)

자삭(子朔) 또는 자상(子翔)

560~519

27

영걸왕(英傑王)

자려(子藜)

519~503

28

일민왕(逸民王)

자강(子岡 또는 子崗)

503~486

29

제세왕(濟世王)

자혼(子混) 또는 자곤(子緄)

486~465

30

청국왕(淸國王)

자벽(子壁)

465~432

31

도국왕(導國王)

자징(子澄)

432~413

32

혁성왕(赫聖王)

자즐(子騭)

413~385

33

화라왕(和羅王)

자위(子謂) 또는 자습(子謵)

385~369

34

설문왕(說文王)

자하(子賀)

369~361

35

경순왕(慶順王)

자화(子華) 또는 자췌(子萃)

361~342

36

가덕왕(嘉德王)

자후(子詡)

342~315

37

삼로왕(三老王)

자욱(子煜) 또는 자오(子𤉇)

315~290

38

현문왕(顯文王)

자석(子釋)

290~251

39

장평왕(章平王)

자윤(子潤)

251~232

40

종통왕(宗統王)

자부(子否) 또는 자비(子丕) 또는 자휼(子恤)

232~220

41

애왕(哀王)

자준(子準)

220~195



참고문헌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

이덕무의 《앙엽기》(盎葉記) - 국가지식포털 한국고전번역원 - 기자조선 계보

이만운의 《기년아람》(紀年兒覽) - 권5 기자조선

청주 한씨 중앙종친회 기자조선 왕위 계보


기원전 194년 이후 위만조선(衛滿朝鮮)으로 넘어간다.


1대 태조문성왕이 상나라에서 넘어온 기자라고 함..

물론, 위 연대는 확실한 고증은 되어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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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의 편지 한 통

기타 관심사/역사 2017. 5. 3. 01:22 Posted by Lucidity1986

마초가 귀순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관우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제갈량에게 마초와 무를 겨루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니, 제갈량은 관우에게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孟起兼資文武, 雄烈過人. 一世之傑, 黥彭之徒, 當與翼德, 並驅爭先, 猶未及髥之絶倫逸群也.

맹기(마초)는 문무를 겸비하고 웅렬이 남보다 뛰어난 일세의 호걸로 응당 익덕(장비)과 말머리를 나란히 해 달리며 선두를 다툴 수는 있으나 염(관우) 그대의 절륜 일군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산서통지(山西通志)권209, 예문(藝文)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관우전(關羽傳))

호승심이 강한 관우가 이 편지를 보고 크게 기뻐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빈객들에게 이 편지를 보여주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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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중국편 오타 - 1

기타 관심사/역사 2017. 5. 2. 16:56 Posted by Lucidity1986


서태후는 1908년에 이미 사망했으며

의화단 운동의 시기를 고려할 때 1900년의 오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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