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관심사/역사 10

사기 - 조선열전(2)

2. 분열과 치욕 그런데 원래 좌장군 순체는 궁중에서 황제를 모시고 그 총애를 받고 있었으며, 그가 이끄는 연나라 군사들과 대(代)나라 군사들은 매우 흉악하였고 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뒤 매우 교만해져 있었다. 하지만 누선장군 양복은 제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처음부터 공격에 실패해 병사들을 많이 잃었기 때문에 사병들은 싸우기를 겁냈고 군관들 역시 마음속으로 불안해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우거왕을 포위할 떄도 항상 화해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좌장군 순체의 공세는 오히려 매우 급했고, 조선은 은밀히 사람을 파견하여 누선장군과 우호를 맺고 누선장군과 투항에 관한 일을 협의하면서 왕래하였다. 그러나 아직 아무 것도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순체는 몇 번이나 양복과 함께 공격하기로 약속했지만..

사기 - 조선열전(1)

1. 아무도 의심하여 믿지 못하다. 조선의 왕 위만(衛滿)은 원래 연(燕)나라 사람이었다. 연나라는 전성시대에 진번(眞番)과 조선을 공격하여 복속시킨 다음 관리를 두는 한편, 국경 지대인 요동 지방에 요새를 쌓게 했다. 훗날 진(秦)나라가 연나라를 멸망시키자 조선은 곧 요동군 밖에 있는 국가로 되었다. 한(漢)나라때 조선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방어가 곤란하여 요동의 요새를 다시 쌓고 패수(浿水 : 중국 주장은 압록강, 우리나라 주장은 송화강)를 경계로 하여 그 땅을 연나라에 소속시켰다. 그 뒤 연나라 왕 노관(盧綰)이 반란을 일으켜 흉노(匈奴)로 도망갔을 때 위만도 망명했다. 그는 천여 명을 이끌고 머리를 상투 모양으로 틀고 만이(蠻夷)의 복장을 하고서 동쪽 요새 밖으로 탈출하였다. 그들은 패수를 건..

무작위 연도(500~경술국치)

566년남진(南陳) 2대 세조(世祖) 문제(文帝) 진천(陳蒨) 7년(~566)북제(北齊) 5대 후주(後主) 고위(高緯) 2년(~577)북주(北周) 3대 고조(高祖) 무제(武帝) 우문옹(宇文邕) 6년(~578)신라(新羅) 24대 진흥왕(眞興王) 김삼맥종(金三麥宗) 27년(~576)고구려(高句麗) 25대 평원왕(平原王) 고양성(高陽成) 8년(~590)백제(百濟) 27대 위덕왕(威德王) 부여창(扶餘昌) 13년(~598) 당 고조(高祖) 이연(李淵) 탄생하다. 567년신라 26대 진평왕(眞平王) 탄생하다.(화랑세기본) 568년진흥왕이 대창(大昌)으로 개원하다. 572년진흥왕이 홍제로 개원하다. 576년신라(新羅) 25대 진지왕(眞智王) 김사륜(金舍輪 혹은 金金輪) 원년(~579) 577년북제(北齊) 6대 유주(..

무작위 연도(기원전~500년)

기원전 225년진(秦) 37대 시황제(始皇帝) 영정(嬴政) 22년(~210)위(衞) 49대 각(角) 5년(~209) 진의 왕분(王賁)이 위나라의 수도 대량(大梁)을 포위하여 3개월만에 수공(水攻)으로 함락시키고, 국왕을 사로잡아 군현을 설치하다. 이로서, 위나라 멸망하다. 위나라의 멸망으로 삼진(三晋)을 모두 평정했다. 진의 몽염(蒙恬)과 이신(李信)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의 평여(平與)와 침(寢)을 각각 공격하여 초군을 격파했으나, 성보(城父)에서 초(楚)의 항연(項燕)이 반격하여 이신의 군대를 크게 무찔러 진나라 도위(都尉) 7명을 죽이다. 기원전 224년결국 진왕이 왕전(王翦)을 다시 기용하여 60만 대군을 동원해 평여와 진(陳)을 함락시키고, 기(蘄)에서 초군을 대파하여 항연을 죽였으며, ..

기자조선(箕子朝鮮)의 왕통

출처 : 위키백과 대수시호 및 묘호이름재위기간(기원전)1태조문성왕(太祖文聖王)자서여(子胥餘) 또는 자수유(子須臾)1126~10822장혜왕(莊惠王)자송(子松)1082~10573경효왕(敬孝王)자순(子詢 또는 子洵)1057~10304공정왕(恭貞王)자백(子伯)1030~10005문무왕(文武王)자춘(子椿)1000~9726태원왕(太原王)자예(子禮)972~9687경창왕(景昌王)자장(子莊)968~9578흥평왕(興平王)자착(子捉)957~9439철위왕(哲威王)자조(子調)943~92510선혜왕(宣惠王)자색(子索)925~89611의양왕(誼襄王)자사(子師)896~84312문혜왕(文惠王)자염(子炎)843~79313성덕왕(盛德王)자월(子越)793~77814도회왕(悼懷王)자직(子職)778~77615문열왕(文烈王)자우(子優)776~76..

제갈량의 편지 한 통

마초가 귀순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관우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제갈량에게 마초와 무를 겨루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니, 제갈량은 관우에게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孟起兼資文武, 雄烈過人. 一世之傑, 黥彭之徒, 當與翼德, 並驅爭先, 猶未及髥之絶倫逸群也.맹기(마초)는 문무를 겸비하고 웅렬이 남보다 뛰어난 일세의 호걸로 응당 익덕(장비)과 말머리를 나란히 해 달리며 선두를 다툴 수는 있으나 염(관우) 그대의 절륜 일군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산서통지(山西通志)권209, 예문(藝文)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관우전(關羽傳))호승심이 강한 관우가 이 편지를 보고 크게 기뻐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빈객들에게 이 편지를 보여주었다 한다.

초원복집 사건(1992)

초원복집 사건은 1992년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 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이다. 1992년 대선을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 부산 초원복집에서 김기춘 법무부 장관과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 모여서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김대중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는데, 이 내용이 정주영을 후보로 낸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에 의해 도청되어 언론에 폭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