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게 쉬고 싶다

God rest my soul

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고향 늬우스 5

절량 농가의 실태 현지보고 - 강원도 편(3)(1957년)

○-홍천군을 다녀나온 기자는 다음으로 비교적 넓은 농토를 많이 가지고 있는(강원도에서는) 횡성군을 찾아보았다. 도 당국의 통계에 의하면 횡성군에는 2월 말 현재로 전체농가 10,691호중 4,270호가 「절량농가」 이다. 횡성군 안에서도 그중 「절량농가」 가 많은 곳은 둔내면으로 그곳은 총 농가수 917호 중 「절량농가」 가 무려 594호나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군에서도 특히 이 면에 대해서는 양곡배급도 하여주고 한편 천주교회 등 원조기관에 양곡원조를 요청하기도 한다고한다 · -이 횡성군의 「절량농민」 도 도내 다른곳의 「절량농민」 과같이 대개가 「화전민」 들이라고 하는데 역시 작년의 흉작으로 말미암아 이미 2, 3개월 전부터 양식이 떨어져 모진 고생을 하고 있는것이다 · -군 당국자에게 그들에대한 대책..

멱 감던 삼남매가 횡사(1956년)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요즘 당지에서 또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즉 지난달 30일 하오 1시경 횡성시내 강에서 당지에 주둔하고 있는 제 1 통신단 소속 GP 6호 「트럭」 운전수 안중사는 동 차량을 닦기 위하여 하천으로 들어가 차를 뒤로 빼다가 하천에서 놀고 있던 원모씨의 2녀 은순(8), 3녀 옥순(6), 삼사 승길(3)의 3형제가 치여 즉사하였다고 하는데 전기 원씨의 처는 자식들의 참변을 듣고 졸도하여 임신중인 태아를 낙태하였다고 하며 원씨마저 실신상태에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 1956년 7월 5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면장이 토지소득세 일부 착복(1955년)

토지수득세 중 일부를 횡령 착복한 면장이 있다. 횡성군 횡성면장 김무규(47)씨는 지난 87년도(1954년) 토지수득세 수납에 있어 전 할당량인 조곡 2,530가마와 콩 412가마를 100% 수납함으로써 세무당국으로부터 수집량에 대한 1할 감량을 보아주게되자 이에 해당하는 조곡 230가마와 콩 37가마는 당연히 납부자들에게 반환해주어야 할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동면 재무계장 원돈희(31)와 공모하여 횡령 착복한것이라는데 최근 이 사실이 밝혀져 방금 횡성경찰서에서 수사에 착수하였다 한다. -동아일보 1955년 12월 29일

전국 모범지서 심사 공근지서가 제1위(1954년)

치안국 주최로 개최되었던 제2회 전국 모범지서 심사 결과 보고에 의하면 횡성군 공근지서가 영예의 제1위를 차지하고 있어 지난 13일 동 지서 광장에서 홍 강원도 경찰국장 참석리에 내무장관 상장수여식을 성대히 거행된바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 이병무 경사(횡성경찰서 근무) -경향신문 1954년 1월 22일

십만대군 추적북상!! 횡성 평창 접근·수도중심부돌입(1951년)

미군 4개사단을 포함하는 10만의 유엔군 대군을 20일 중부 한국회갈색저즌고지에 잠복하고 있는 중공군 및 북한괴뢰군을 공격하여 12리 이상을 전진하였다. 이 공격에는 미 제9 및 제10의 양 군단이 참가하였는데 그 전선은 54리에 이르렀다. 2일 전 맥아더 장군의 진두지휘로 시작된 이 도륙작전에 한국 진흙길을 북상하는 약 6만의 미군과 영국군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군 및 한국군이 참가하였다. 한국군 1개 사단은 산길을 따라 전진하여 38선남방 15리 지점까지 도달하였다. 이에 대한 적의 저항은 산만하였다. 북한 괴뢰군의 일부는 공포에 사로잡혀 급속히 퇴각하였다. 또 다른 지점에서는 중공군이 산병호 내에서 전면에 바리케이트를 구축하고 완강히 저항하였다. 이선에서는 공산군 약 4만이 배치되어있는데 여기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