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총기사고 4

행인에 카르빈 난사(1966년)

12일 밤 11시 30분쯤 강원도 춘성군 서면 대동리 부락에서 대간첩 작전을 위해 파견중이던 육군00병기대대 26중대 소속 최금석(21/충남 금산) 하사는 잃어버린 군수품 때문에 부락 청년과 언쟁이 붙어 4명의 부락인을 카르빈 총으로 쏴죽이고 어린이 2명을 포함한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최하사는 사고 후 도주했는데 13일 상오 10시 사건 현장에서 1킬로 떨어진 화천에서 이마를 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 최하사는 3명의 병사와 함께 파견근무중 10일 상오 9시 잃어버린 통일화(https://m.blog.naver.com/pjw9502/220837131956)와 비옷을 부락에서 발견하고 부락인을 도둑이라고 구타한 일이 있는데 이에 격분한 부락인들이 이틀이 지난 사고 당일 보복과 군 수사기관에 고발하려 ..

심야의 보초병 내무반에 카르빈 난사(1965년)

23일 새벽 1시반쯤 시내 동래구 안여동 소재 육군 제0경비중대 3소대 내에서 야간 보초중이던 이찬휘(23=경기도 의정부 호원리 외미63) 일병이 내무반에 들어가 직속상관인 "이영주 상병과 김철운 병장 나오너라"고 고함을 치면서 카르빈 약 30발을 난사, 잠자고 있던 강수복(27) 일병, 박노임(23), 최창식 일병 등 3명의 사병을 죽이고 나란히 누웠던 사병 김찬식 일병등 9명(중상 5명, 경상4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후 카르빈 총과 90발의 실탄을 갖고 도주했다. 군 당국은 사건발생 즉시 부산 시내와 경남도내 일원에 비상망을 펴고 군경 합동으로 범인체포에 나섰으나 이날 정오 현재 범인의 행방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 도주한 이일병의 '나의 부탁'이란 유서 1통이 사건현장에 있었다. 이 유서는 "김병장 ..

최영오 일병 사건(1962)

최영오(崔永吾, 1938년 ~ 1963년 3월 18일) 일병 사건은 1962년 7월 8일 오전 8시, 현역 일병 최영오가 주둔 부대 내에서 선임병사 2명을 총기로 살해한 사건이다. 1. 사건 발단최영오에게 도착한 애인의 편지를 선임병이 먼저 가로채 뜯어본 후 최영오를 조롱하자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다가 도리어 선임병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이에 분을 참지 못한 최영오는 결국 선임병 2명을 총살하기에 이르렀다. 2. 사회 이슈 및 여파서울대 천문기상학과를 다니다 휴학하고 단기 학보병 신분으로 입대한 최영오는 명문대생이라는 점 때문에 사회적으로 상당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군사법원은 최영오에게 사형 판결을 하였다. 각계 각층에서 구명운동이 벌어졌다. 요즘 같으면 모르겠지만 당시는 5.16 직후로 대한민국에..

우순경 사건(1982)

우범곤 순경 총기 난사 사건(禹範坤巡警 銃器亂射事件)은 1982년 4월 26일 대한민국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에서 당시 계급이 순경이었던 경찰관 우범곤이 저지른 총기 살인 사건이다. 1. 원인 해병대 특등사수 출신이었던 순경 우범곤(1955년 11월 5일 ~ 1982년 4월 27일)은 1981년 4월부터 1982년 2월까지 청와대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지만, 인사 과정에서 탈락하여 1982년 3월 의령군으로 좌천되었고, 동거녀 전말순(당시 25세)과의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당시 경찰은 평소 술버릇이 나빴던 우범곤이 동거녀와 말다툼을 벌인 뒤 흥분 상태에서 우발적인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결론지었다. 2. 경과 1982년 4월 26일 오후 7시 30분경에 예비군 무기고에서 카빈소총 2정, 실탄 180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