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새벽 1시반쯤 시내 동래구 안여동 소재 육군 제0경비중대 3소대 내에서 야간 보초중이던 이찬휘(23=경기도 의정부 호원리 외미63) 일병이 내무반에 들어가 직속상관인 "이영주 상병과 김철운 병장 나오너라"고 고함을 치면서 카르빈 약 30발을 난사, 잠자고 있던 강수복(27) 일병, 박노임(23), 최창식 일병 등 3명의 사병을 죽이고 나란히 누웠던 사병 김찬식 일병등 9명(중상 5명, 경상4명)에게 중경상을 입힌 후 카르빈 총과 90발의 실탄을 갖고 도주했다.
군 당국은 사건발생 즉시 부산 시내와 경남도내 일원에 비상망을 펴고 군경 합동으로 범인체포에 나섰으나 이날 정오 현재 범인의 행방조차 파악 못하고 있다.
도주한 이일병의 '나의 부탁'이란 유서 1통이 사건현장에 있었다. 이 유서는 "김병장 형님 문병장 형님 저의 상급자 그리고 여러 형님들 용서하시오. 저는 어디다가 하소연할 길이 없어 총 한발로 인생의 종말을 짓는것입니다. 남용아(같은 중대 내 동료) 우리집에 안부 전하고 고향에 남아있는 부모형제 잘 부탁한다." 는 요지로 되어 있다.
29명취침중 총상을 입은 9명의 사병들은 즉시 제3육군병원에 이송, 응급가료중에 있으나 복부등 관통상을 입은 4,5 명의 사병들은 출혈이 심해 생명이 위독하다.
한편 최 군수기지사령관은 "책임소재를 밝혀 지휘관에게까지 그 책임을 묻기로하겠다" 고 말했다.
사고현장에 수사본부를 설치한 육군 제 17범죄수사대는 경비중대장 김봉준 대위(탄약고 관리 책임겸무)를 비롯하여 동선임하사 조광순 중사 그리고 수일전 문제의 범인 이찬휘(군번=11318562)일병에게 모진 기합을 가한것으로 알려진 이영주 상병등 10여명을 연행문초중이다.
이일병은 이날 새벽 1시경 탄약고에서 보초근무 중 탄약고 자물쇠를 파괴하고 카르빈 실탄 30발들이 탄창 4개를 훔쳐냈었다.
이상병의 범행동기는 지난 16일 밤 9시경 동 부대 제 3분대 부분대장 김철웅 병장이 조남철, 이영주, 이기복 등 3명의 상병을 내무반에 데려다놓고 '군기문란' 운운하면서 야전용 곡괭이자루로 무수히 구타했는데 기합을 받은 이영주 상병은 다시 지난 18일 밤 10시경 그 부하인 이찬휘 일병등 수명을 또다시 내무반에 데려다놓고 모진 기합을 준데서 일어난 하극상으로 보고있다.
-경향신문 1965년 8월 23일
참고로 이찬휘 일병은 사건발생 12시간만에 산속에서 왼쪽 가슴에 총 2발을 쏘아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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