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밤 11시 30분쯤 강원도 춘성군 서면 대동리 부락에서 대간첩 작전을 위해 파견중이던 육군00병기대대 26중대 소속 최금석(21/충남 금산) 하사는 잃어버린 군수품 때문에 부락 청년과 언쟁이 붙어 4명의 부락인을 카르빈 총으로 쏴죽이고 어린이 2명을 포함한 3명에게 중상을 입혔다.
최하사는 사고 후 도주했는데 13일 상오 10시 사건 현장에서 1킬로 떨어진 화천에서 이마를 쏜 자살한 시체로 발견됐다.
최하사는 3명의 병사와 함께 파견근무중 10일 상오 9시 잃어버린 통일화(https://m.blog.naver.com/pjw9502/220837131956)와 비옷을 부락에서 발견하고 부락인을 도둑이라고 구타한 일이 있는데 이에 격분한 부락인들이 이틀이 지난 사고 당일 보복과 군 수사기관에 고발하려 한다는 소식에 격분, 마을문고 관계를 논의하던 회의장인 삼선국민학교에 나타나 회원 25명에게 카르빈 총을 들이대고 시비가 붙어 카르빈 총을 난사하여 최하사를 가로막은 청년회장 이효창(32)씨는 현장에서 즉사하고 운동장으로 도망치던 성춘경(40), 유옥순(32), 박은식(42)씨 등이 뒤쫓아오며 쏜 총을 맞고 죽었다.
술기가있던 최하사는 계속 이들을 뒤쫓아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총질을 해 성규열(51)씨와 성씨의 3녀 영옥(12) 4녀 명숙(9)양 등 3명이 각각 총상을 입었다. 중상자들은 인근 육군야전병원에 입원가료중이다.
13일 상오 군 수사기관은 최하사와 함께 파견됐던 3명의 병사를 연행, 진상을 캐고있다.
그런데 최하사의 호주머니속에서 "여자 때문에 죽는다"는 내용의 유서 1통이 발견되었다.
동네 사람에 의하면 최하사는 작년 7월경부터 이동네 성주철씨의 딸(20)을 짝사랑해왔으나 성양 가족의 반대를 받아왔다한다.
최하사는 술을 잘하고 장기복무 지원병이었으며 고향은 충남 금산군 금산읍 토옥리, 집에는 어머니와 형 하나가 있다고 한다.
-경향신문 1966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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