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재판 5

4명 총살 언도(1948년)

박대령 암살사건에 대한 고등군법재판은 드듸여 14일 오전 11시 반 문상길(23)중위, 신상우(20), 손선호(22), 배경용(19) 등 4명의 하사관에 대하야 총살을 언도하고 또 양회천(25) 이등병에는 무기, 강승규(22) 일등병에게는 5개년 징역을 언도하였다. 손 피고는 12일 공판에서 태연자약하게 암살동기와 목격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박대령의 작전 공격은 불만하였다. 사격연습을 한다 하고 부락의 소, 기타 가축을 박살하였으며 폭도의 처소를 안내하는 양민을 총살한 례도 많다. 또한 매일 한사람이 한사람의 폭도를 체포하라는 둥 부하에 대한 애정이 전연 없었다." 한편 이 판결은 통위부장을 거쳐 군정장관의 인준이 있은 후 비로서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1948년 8월 15일 결말..

서울지법 추행강도 3명에 사형선고(1983년)

강도 강간범 3명에게 사횽이 선고됐다. 서울형사지법합의 13부(재판장 이영범 부장판사)는 17일 대낮 가정집에 들어가 강도, 추행을 일삼아온 황인규(24/서울서대문구 가좌동)등 7명의 피고인에 대한 선고 공판에서 황 피고인과 최윤성(24), 최성훈(20)등 3명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을 적용, 검찰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또 함께 범행을 한 김진기(21), 정태수(20)등 2명의 피고인에게는 검찰 구형대로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황동규(20) 피고인 등 2명에게는 각각 징역 7년,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네 차례의 강도 강간을 포함, 모두 21차례의 강도행위를 한 이들의 범행은 재물을 빼앗는데 그친것이 아니라 인격과 수치심을 모두 말살한 것으로 육체적 살인보다 어떤면에서는 더 무거..

김두한에 사형을 언도 15명은 20년 이상 종신징역(1948년)

한때 세간의 이목을 모으던 대한민청 김두한 등 16명에 관한 군률재판은 지난 2월 12일에 끝났으나 군사위원들은 그 판결 내용을 발표하지 않어 그 결과에 대하여 일반은 매우 궁굼히 생각하고있던바 하-지 중장은 15일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하엿다. 군사위원들은 2명의 살해 폭동 사형(私刑) 기타 신체에 대한 고문을 감행한 피고들에게 유죄를 판결하여 다음과 같이 언도하였다. 피고들에게 유죄판결을 하여 김두한등 14명에게는 교수형 문화태 등 2명에게는 종신형을 언도하였는데 하-지 중장은 이상 판결문과 증거사실을 재심한 후 다음과 같이 감형을 선언하였다. 교수형 = 김두한 종신 = 김영태, 신영균, 홍만길, 조희창 30년 = 박기영, 양동수, 임일택, 김두윤, 이영근, 이창성, 송창환, 고경주, 김관철 ..

법정서 김두한 할복을 기도(1948년)

대한민청 사건의 책임을 지겠다고 고백한 김두한이 법정에서 할복을 기도하였다. 대한민청 사건에 대한 군정재판은 12일도 속개되어 오전 9시부터 최후적인 검사의 논고가 시작되어 엄벌에 처해야 되겠다는 대목에 이르자 김두한은 군정재판을 받을 수 없다고 외치면서 몸에 감춰가지고 있던 깡통조각으로 배를 세번 그었다. 이에 재판정은 일시 혼란을 이루었는데 이미 폐정이 되고 말았다. 김의 상처는 약간 뱃가죽을 벗겨 피가 좀 났을뿐 대단치는 않은 모양이라 한다. 이 재판은 이대로 끝나는 것인지 또는 게속될것인지에 관하여서 판사측으로부터는 아모런 발언도 없어 알길이 없으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것으로써 재판은 끝났음으로 6명의 판사의 합의가 끝나는대로 하-지 중장의 결재를 기다려 수일내로 판결이 언도될 것이라 한다. -..

김두한 등 언도 최고 징역 7년(1947년)

전 대한민청원 김두한 외 13명에 대한 상해치사죄에 관한 공판은 작 3일 오전 11시부터 심리원대법정에서 신언한 검찰관 입회 아래 이필빈 심판관 주심으로 개정되여 각기 다음과 같은 언도가 있었다. 김영태 징역 7년(구형 5년), 신영균 징역 5년(구형 4년), 홍만길 징역 2년(구형 1년), 김두한, 김두윤, 이ㅁ주(한자해독불가), 고경주, 주기현 벌금 2만원 조희창 무죄 기타 3명 1만 5천원 -조선일보 1947년 7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