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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재판

김두한에 사형을 언도 15명은 20년 이상 종신징역(1948년)

Lucidity1986 2022. 5. 30. 14:13

한때 세간의 이목을 모으던 대한민청 김두한 등 16명에 관한 군률재판은 지난 2월 12일에 끝났으나 군사위원들은 그 판결 내용을 발표하지 않어 그 결과에 대하여 일반은 매우 궁굼히 생각하고있던바 하-지 중장은 15일 이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발표하엿다.

군사위원들은 2명의 살해 폭동 사형(私刑) 기타 신체에 대한 고문을 감행한 피고들에게 유죄를 판결하여 다음과 같이 언도하였다. 피고들에게 유죄판결을 하여 김두한등 14명에게는 교수형 문화태 등 2명에게는 종신형을 언도하였는데 하-지 중장은 이상 판결문과 증거사실을 재심한 후 다음과 같이 감형을 선언하였다.

교수형 = 김두한
종신 = 김영태, 신영균, 홍만길, 조희창
30년 = 박기영, 양동수, 임일택, 김두윤, 이영근, 이창성, 송창환, 고경주, 김관철
20년 = 문화태, 송기현

이상과 같이 감형되어 수감이 명령되었는데 하-지 중장으로부터 수감장소가 명령될때까지는 7사단 구금소에 임시유치되고있다. 김두한의 교수형에 대하여서는 교수형 집행 전에 극동사령부 총사령관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형집행 기일에 대해서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경향신문 1948년 3월 17일

 

1. 사건의 성격: '초법적 정치 테러에 대한 미군정의 엄단'

  • 재판 주체: 미군정 군률재판 (군사위원회).
  • 주요 피고: 김두한(대한민청 핵심 인물) 외 15명.
  • 죄목: 살인, 폭동, 사형(私刑), 고문 등.
  • 최종 판결: 김두한 '교수형(사형)', 나머지 단원 '종신형' 및 '장기 징역형'.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법치주의 대 원칙: '사형(私刑)'에 대한 금지 미군정은 김두한 일당의 행위를 단순한 우익 활동이 아닌 '사형(Private Execution)'과 '고문'으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국가의 사법권을 거치지 않고 사적으로 형벌을 가해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간주했음을 보여줍니다. 비록 이념적으로 우익을 지지했던 미군정이었으나, 도를 넘은 폭력과 살인에는 타협하지 않았다는 점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② 하지(Hodge) 중장의 개입과 감형권 행사 당시 미군정 사령관이었던 존 하지 중장은 군사위원회의 판결을 재심한 후 감형을 선언했습니다.

  • 초기 언도: 14명 교수형, 2명 종신형 (매우 가혹한 일괄 처벌).
  • 조정 후: 김두한 1명만 교수형 유지, 나머지는 종신형~20년형으로 감형. 이는 주모자에게는 가장 엄한 책임을 묻되, 가담자들에게는 법적 형평성을 맞추려 했던 사법적 판단이자, 우익 청년단의 반발을 고려한 정치적 안배가 섞여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③ 최종 승인권자: '극동사령부 총사령관' 김두한의 교수형 집행을 위해서는 맥아더(Douglas MacArthur) 장군이 이끄는 극동사령부의 최종 승인이 필요했다는 대목이 인상적입니다. 당시 한반도의 사법권이 미군정의 상위 기구인 도쿄의 극동사령부 통제하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실증입니다.

3. 시대적 맥락: 사형 선고와 석방의 반전

기사 내용만 보면 김두한은 교수형에 처해질 운명이었으나, 실제 역사는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1. 사형 선고: 미군정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대전형무소 등에 수감됨.
  2.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 이후, 이승만 정부는 이들을 '반공 투사'로 예우하며 대대적인 사면과 석방을 단행했습니다.
  3. 정치적 부활: 사형수였던 김두한은 석방 후 훗날 국회의원까지 당선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