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5 저격범 문세광(22·일명 문세웅)·일본명 吉井世雄에 대한 사형이 20일 오전 7시 31분 집행됐다.
이날 문에 대한 사형은 대검 공판부장 조태형 대검검사의 지휘로 박도형 서울구치소장, 김치연 목사, 김용우 법무부교정과장 및 의무관등이 입회한 가운데 범행 128일 만에, 사형이 확정된지 3일만에 서울구치소 사형장에서 교수형으로 집행됐다.
문은 이날 아침 7시 5분 사형장에 나와 담담한 표정으로 서울구치소 박소장으로부터 이름 나이 본적 주소 등 인정심문을 받은 다음 1,2,3심의 판결문 고지에 이어 사형 집행통지를 받자 "나는 지금부터 사형이 집행되는 것입니까" 라면서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렸다.
이어 박 대통령과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언을 마친 문은 김목사가 기도하는동안 조용히 두 손을 모아 합장한 채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3분간 기도를 올렸다.
이날 문에 대한 사형집행절차는 오전 8시 모두 마쳤다.
한편 문은 1심에서는 최후 진술을 총해 "역사는 나에게 무죄를 선고해줄것"이라는 등 전혀 반성하는 빛을 보이지 않았으나 항소심에서의 최후 진술에서는 "박 대통령과 국민 전체에 죄송한 마음 금할 수 없다. 지금 과오를 깊이 뉘우치고 있으니 올바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면 감사하겠다" 는 등 심정 변화를 일으키기도 했었다.
문세광은 또 최근엔 옥중수기를 통해 "나는 조국의 하늘 아래 살고싶다" "암살목적으로 고국의 땅을 밟았을 때 조국의 하늘이 이처럼 푸른것을 처음 알았다"는 등 생의 애착을 느끼기도 했으나 그는 씻을 수 없는 그의 죄과에 따라 끝내 23회 생일(오는 26일)을 6일 남겨놓은 이날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동아일보 1974년 12월 20일
1. 사건의 성격: '체제 전복을 꾀한 테러리스트의 최후'
- 피고인: 문세광(22세, 재일동포 출신).
- 사건 요약: 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하려다 육영수 여사를 저격 살해한 사건.
- 집행 특징: 범행 후 128일, 사형 확정 후 불과 3일 만에 전격 집행.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전격적인 집행 속도: '확정 3일 만의 처형'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온 것이 12월 17일이었는데, 단 3일 뒤인 20일에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이는 앞서 보신 인혁당 사건(18시간) 정도는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사형 집행 절차에 비해 대단히 이례적인 속도입니다.
- 정치적 배경: 육영수 여사에 대한 국민적 추모 열기와 북한/조총련 배후설에 대한 단죄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민심을 수습하려는 유신 정권의 의도가 반영되었습니다.
② 심경의 변화: "역사는 무죄"에서 "참회의 눈물"까지
기사는 문세광의 심리적 변화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초기: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이라는 호기로운 태도로 자신의 행위를 '혁명'이라 믿었습니다.
- 말기: 옥중 수기를 통해 "조국의 하늘 아래 살고 싶다"며 생에 대한 강한 애착을 보였고, 집행 직전에는 "박 대통령과 국민에게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는 이념에 경도되었던 청년이 죽음 앞에서 마주한 인간적인 공포와 뒤늦은 후회를 상징합니다.
③ 23세 생일을 앞둔 죽음
기사는 그가 생일을 단 6일 남겨두고 처형되었음을 강조합니다. 이는 그의 나이가 매우 어렸음을 환기하는 동시에, 그 어린 나이에 국가적 참극을 일으킨 범죄의 엄중함을 대조시키는 문학적 서술 기법이기도 합니다.
④ 한일 관계의 뇌관: '길이 유키오(吉井世雄)'
일본명 '길이 유키오'가 언급된 것은 이 사건이 일본 여권을 이용해 입국한 재일동포에 의해 저질러졌음을 보여줍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당시 한일 관계는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의 위기를 맞이했으며, 일본 정부의 사과와 조총련 규제를 둘러싼 외교적 마찰이 극심했습니다.
3. 시대적 맥락: 유신 정권의 공고화
1974년은 긴급조치 발동과 민청학련 사건 등 유신 체제의 억압이 극에 달했던 해입니다. 이러한 삼엄한 분위기 속에서 영부인의 피격 사망은 정권에게 큰 위기이자 기회였습니다. 문세광의 신속한 처형은 '반공'과 '국가 안보'를 명분으로 유신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상징적인 장치가 되었습니다.
문세광 사건 처리 일지 (1974)
| 날짜 | 사건 내용 | 비고 |
| 08. 15. | 국립극장 광복절 기념식장 저격 사건 발생 | 육영수 여사 서거 |
| 10. 19. | 1심 사형 선고 | 서울형사지법 |
| 11. 20. | 2심 상소 기각 (사형 유지) | 서울고법 |
| 12. 17. | 대법원 사형 확정 | 상고 기각 |
| 12. 20. | 서울구치소 사형 집행 | 확정 후 3일 만 |
4. 시사점
문세광은 교수대에 서기 직전 "나는 지금부터 사형이 집행되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거나, 모종의 정치적 배려(감형 등)를 기대했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하지만 국가는 영부인의 죽음에 대해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책임을 물었고, 이 사건은 이후 한국 사회의 대북/대일 인식에 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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