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게 쉬고 싶다

God rest my soul

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 100

멱 감던 삼남매가 횡사(1956년)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요즘 당지에서 또 교통사고가 발생하였다. 즉 지난달 30일 하오 1시경 횡성시내 강에서 당지에 주둔하고 있는 제 1 통신단 소속 GP 6호 「트럭」 운전수 안중사는 동 차량을 닦기 위하여 하천으로 들어가 차를 뒤로 빼다가 하천에서 놀고 있던 원모씨의 2녀 은순(8), 3녀 옥순(6), 삼사 승길(3)의 3형제가 치여 즉사하였다고 하는데 전기 원씨의 처는 자식들의 참변을 듣고 졸도하여 임신중인 태아를 낙태하였다고 하며 원씨마저 실신상태에 있다고 한다. -조선일보 1956년 7월 5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면장이 토지소득세 일부 착복(1955년)

토지수득세 중 일부를 횡령 착복한 면장이 있다. 횡성군 횡성면장 김무규(47)씨는 지난 87년도(1954년) 토지수득세 수납에 있어 전 할당량인 조곡 2,530가마와 콩 412가마를 100% 수납함으로써 세무당국으로부터 수집량에 대한 1할 감량을 보아주게되자 이에 해당하는 조곡 230가마와 콩 37가마는 당연히 납부자들에게 반환해주어야 할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동면 재무계장 원돈희(31)와 공모하여 횡령 착복한것이라는데 최근 이 사실이 밝혀져 방금 횡성경찰서에서 수사에 착수하였다 한다. -동아일보 1955년 12월 29일

전국 모범지서 심사 공근지서가 제1위(1954년)

치안국 주최로 개최되었던 제2회 전국 모범지서 심사 결과 보고에 의하면 횡성군 공근지서가 영예의 제1위를 차지하고 있어 지난 13일 동 지서 광장에서 홍 강원도 경찰국장 참석리에 내무장관 상장수여식을 성대히 거행된바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 ▲ 이병무 경사(횡성경찰서 근무) -경향신문 1954년 1월 22일

십만대군 추적북상!! 횡성 평창 접근·수도중심부돌입(1951년)

미군 4개사단을 포함하는 10만의 유엔군 대군을 20일 중부 한국회갈색저즌고지에 잠복하고 있는 중공군 및 북한괴뢰군을 공격하여 12리 이상을 전진하였다. 이 공격에는 미 제9 및 제10의 양 군단이 참가하였는데 그 전선은 54리에 이르렀다. 2일 전 맥아더 장군의 진두지휘로 시작된 이 도륙작전에 한국 진흙길을 북상하는 약 6만의 미군과 영국군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군 및 한국군이 참가하였다. 한국군 1개 사단은 산길을 따라 전진하여 38선남방 15리 지점까지 도달하였다. 이에 대한 적의 저항은 산만하였다. 북한 괴뢰군의 일부는 공포에 사로잡혀 급속히 퇴각하였다. 또 다른 지점에서는 중공군이 산병호 내에서 전면에 바리케이트를 구축하고 완강히 저항하였다. 이선에서는 공산군 약 4만이 배치되어있는데 여기에는 ..

상호신용금고 원장에 기입 않고 빼돌려 443명 14억 피해(1983년)

상호신용금고가 영세상인들의 돈을 예탁받으면서 이를 원장에 기재하지 않은채 어음을 발행해주고 돈을 빼돌린후 지급일이되자 금고사장이 부도를 냈다는 이유로 지급을 거절, 4백여 가입자들이 예탁금을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다. 대전시 원동 20의 19 삼영 상호신용금고(사장 김익촌)는 지난 6월 27일 사장 김씨가 부도를 낸 후 6월28일 신용금고연합회에서 관리인을 선임해 관리해오다 지급일이된 예탁자들이 지난 1일부터 지불을 요구하기 시작했으나 김씨 등 전 금고임원들은 이미 잠적해버렸다. 또 현 관리인들은 '5천만원만 원장에 기록돼있고 나머지는 김사장 개인어음이며 1천만원 이상 액면의 어음은 연합회의 신용관리기금에서도 지불이 어려울것 "이라고 말한 뿐 아무런 지불대책을 제시하지 못해 예탁자들이 사무실에 몰려들어 ..

자식 빚보증 고민 할머니 자살(1996년)

빚 보증 때문에 자식 월급을 압류당하게 되자 자신의 전세금을 빼 빚을 해결하라며 60대 할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5일 새벽 3시15분께 서울 관악구 신림5동 김아무개(46)씨 연립주택 에서 이 집 지하에 세들어 살던 송국보 (69) 씨가 방안 벽에 못을 박고 운동화 끈으로 목을 맨 채 숨져 있는 것을 송씨의 작은아들 김아무개 (35·공무원·동작구)씨가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김씨에 따르면, 3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94년부터 '혼자 사는 게 편하다'며 전세금 2천2백만원짜리 단칸 지하 셋방에서 살아오던 어머니가 이날 오전 3시께 갑자기 '죽고 싶다'고 전화를 걸어와 황급하게 찾아가 보니 숨져 있었다는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송씨는 94년에 영업용택시 운전사인 셋째사위 홍아무개(44) 씨가 개..

빚 때문에 여인 자살(1955년)

친정에서 꾸어온 돈을 남편이 반환치 못하는 것을 비관하여 자살한 여인이 있다. 주소를 서울시 종로구 원서동 4에 둔 노병수(29)씨는 약 한달전 친정에서 50만 환을 한달기한으로 빌려다가 남편의 사업비용으로 조달하여 주었는데 요즘와서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여 그 돈 갚을 길이 없는 것을 비관하여 27일 하오 2시 경 다량의 수면제를 마시고 자살하였다 한다. -조선일보 1955년 3월 29일

광양 공사 차질 대노(1989년)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이 최근 광양제철소를 순시, 광양3기 설비 건설공사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을 보고 관계자들을 크게 꾸짖었다는 후문. 이 공사는 내년1월 준공 목표로 박 회장이 포철에 재임하고 있는 동안 완공할 계획이었고 박 회장 자신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최대 역점사업. 박 회장은 공사가 차질을 빚으면 수요 업체에도 심각한 타격이 우려된다고 밝히며 이같은 상황을 자세히 알리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편 현대중공업을 비롯, 지난5월 초 파업이 끝난 한국중공업 등은 포철 공사가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 마치 자기들 때문인 것처럼 알려지고 있어 못마땅한 표정. -매일경제 1989년 7월 6일

닮아가는 옛 수법 박 대통령이 대노(1966년)

연발하는 테러사건들이 시원스럽게 풀리지 않아 가뜩이나 정부가 의심을 받고 있는판에 경찰이 박한상 의원 테러 범인이라고 발표한 용의자가 경찰측의 조작에 의한것으로 점차 굳어지자 정부 고위 당국자들은 명년 선거에 표를 깎는 짓을 저지르는것 같다고 큰 걱정. 정일권 국무총리는 18일 아침 엄민영 내무부장관, 민복기 법무장관, 이봉성 서울지검장 등을 불러 박 의원 테러사건에 대한 진상 보고를받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했는데,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은 대노하여 철저히 조사하여 관계자를 엄벌하도록 지시. 그런데 한 당국자는 「조작한 것이 사실이라면 테러사건도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해를 피하기 어렵게 되었다」 면서 「경찰의 숫법이 점차 자유당 시대의 모습을 닮아간다」 고 걱정. 그는 「박 대통령이 제일 싫어하는 것이 ..

"부사장직함 그대로인데 축하할일이냐"대노(1979년)

효성그룹 조회장의 2남인 조양래 한국타이어 부사장이 경영권을 넘겨받던 날 구설수가 생겼다. 타이어업계 원로경영자인 장선곤씨 밑에서 약 10년간 경영을 수업한 그가 뜻있는 날에 화를 내게 된 원인은 하찮은 축하화분 때문이라는 사실이 고소거리. 계열 기업관계에 있는 H건설이 조양래씨의 경영권 인수를 기념하는 뜻에서 커다란 축하화분을 보낸 것이 양래씨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고. 측근에선 장사장과 함께 대표이사 부사장으로 있던 그가 부사장 직함을 그대로 지닌채 경영권은 맡은게 뭐가 축하할 일이냐고 해명. 결국 양래씨가 대노하자 총무부서에서는 화분을 도로 가져가라고 한바탕 소동 을 벌였다니......... -매일경제 1979년 9월 8일

사조직 노출 YS 대노(1992년)

민주당 내 민주계는 대선을 앞두고 김영삼대표의 사조직 관리를 일원화하기 위해 6일 하오 원효로 소재 사무실 입주식을 가질 예정이었으나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자 황급히 취소. 김대표는 최근 민주산악회등 자신의 각종 사조직 개편 문제와 민주사회연구소를 이끌어온 차남 현철씨의 거취문제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자 대노하여 사조직 총괄책임자인 최형우 전 정무장관에게 호통을 쳤다는 후문. -경향신문 1992년 7월 7일

"장관은 뭐하냐" DJ 대노 경제대책 조정회의서 강한 질책(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20일 오후 경제대책 조정회의에서 「경제팀」을 전례없이 강한 어조로 질책했다. 박지원 대변인은 『취임 후 그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 봤다』 고 전했다. 김 대통령은 『외환보유액을 늘리고 환율과 금리, 물가를 안정시켰지만 이는 외국의 도움에 의한 것 』 이라며 『우리가 한 것이 무엇이며 어떤 성과를 올렸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김 대통령은 『경기 회복을 위해 많은 돈을 풀었으나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는 효과가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 『공기업은 국내외적으로 개혁이 안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수출은 안하고 수입이 축소되는 것만 기다리고 있다.』 『실업대책은 아직도 효과적이지 못하다.』 고 지적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왜 장관들은 현장에 나가지 않고 부하들의 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