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게 쉬고 싶다

God rest my soul

전체 글 1885

천추사 박신생이 칙서 세 통을 가지고 경사에서 돌아오다

천추사(千秋使) 박신생(朴信生)이 칙서 세 통을 싸서 받들고 경사에서 돌아왔다. 임금(세종)이 의장(儀仗)을 갖추어 세자(문종) 이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모화관에 거둥하여 칙서를 맞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다. 그 첫째에 말하기를, "지금 목란하(木蘭河) 등 위(衛)의 야인 지휘(指揮) 올고리(兀苦里) 등이 아뢰기를, ‘근자에 라리(剌里) 지역에 가서 흑룡강의 칠성(七姓) 야인들이 송화강을 건너서 조선국에 가서 침노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 하였다. 짐(朕:선덕제)이 생각하건대, 이 도적들이 간사하고 속이니 허위인지 사실인지의 여하는 알지 못하나, 이에 왕이 보내 온 사신이 돌아가는 편에 특별히 왕에게 일러 알게 하는 것이니, 왕은 변방을 지키는 관원에게 경계하여 밤낮으로 마음을 써서 방비하여, 소홀한 ..

귀국하던 섬라곡 사신이 일본에서 약탈당하고 되돌아오다

섬라곡(暹羅斛:시암=태국)의 사절 장사도(張思道) 등이 돌아와서 말하였다. "작년 12월에 회례사(回禮使) 배후(裵厚)와 함께 일본에 이르렀다가, 도적에게 약탈당하여 예물과 행장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다시 배 한 척을 꾸며 주시면 금년 겨울을 기다려서 본국에 돌아가겠습니다." 그리고 칼과 갑옷과 구리그릇과 흑인(?) 두 사람을 바쳤다. 왕(태조)이 정사를 보고 있었는데, 예조에 명령하여 섬라곡 사람을 인도해서 반열(班列)에 나오게 하였다. 태조 3년(1394년) 7월 5일

청차 이일선이 군량을 보내줄 것을 요구하여 이에 따르다.

청차(淸差) 이일선(李一善)이 칙서를 가지고 나왔는데, 영의정 정태화 등이 상(효종)에게 교영(郊迎)할 것을 권하니, 승지 서원리(徐元履)도 그 말에 적극 찬동하였다. 상이 서교(西郊)에 나아가서 맞이하고 희정당(熙政堂)에서 접견하였다. 일선이 말하기를, "대국(청)이 군병을 동원하여 나선(羅禪:러시아)을 토벌하려는데, 군량이 매우 부족합니다. 본국에서도 군병을 도와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본국에서 다섯 달 치의 군량을 보내 주시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적의 형세는 어떠하오?" 하자 일선이 말하기를, "적병은 1천여 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나, 저희들이 이처럼 달려오게 된 것은 북로(北路)에 비축한 것이 없음을 염려한 나머지, 내지(內地)의 곡물을 수송하여 군량을 이어대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

청차 한거원이 서울로 들어오다.

청차(淸差) 한거원(韓巨源)이 서울에 들어왔다. 상(효종)이 편전에서 접견할 적에 대신들도 역시 입시하였는데, 거원이 예부(禮部)의 자문(咨文)을 바쳤다. 그 자문에 이르기를, "조선에서 조창(鳥槍)을 잘 쏘는 사람 1 백 명을 선발하여, 회령부(會寧府)를 경유하여 앙방장(昂邦章)의 통솔을 받아 가서 나선(羅禪:러시아)을 정벌하되, 3월 초10일에 영고탑(寧古塔)에 도착하시오." 하였다. 거원이 자리를 피하여 절을 하자, 상이 위유하고 이어 차를 하사하면서 이르기를, "나선은 어떤 나라이오?" 하니, 거원이 아뢰기를, "영고탑 옆에 별종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나선입니다." 하였다. 거원이 회자(回咨) 받기를 청하자, 영의정 정태화가 말하기를, "영장(領將)은 어떤 관원으로 정하여 보내야 하겠소?"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