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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폭발

만취 사병 극장출구에 수류탄(1968년)

Lucidity1986 2022. 7. 17. 16:53

토요일인 18일 밤 10시 25분경 경북 안동시 운흥동 142 문화극장에서 국산영화 "복수"의 마지막 회 구경을 마치고 막 극장문을 나서던 관람객들에게 술에 만취된 전방사단 소속 휴가병이 미제 수류탄(M26) 2발을 약 30초 간격으로 던져 폭발시키는 바람에 국민교 어린이 2명을 포함한 5명이 현장에서 즉사하고, 19명이 중상, 다른 16명이 경상을 입고 퇴장하던 관람객 1300여명이 혼비백산하여 일대 혼란을 빚은 불상사가 발생했다.

범인 신영식 하사(23ㆍ육군 제 O사단 OO연대 2대대 7중대 향도)는 범행 후 50분만에 현장에서 150m지점에 있는 「향영」여인숙에 잠입해 있는것을 안동경찰서 형사대가 포위검거하여 군 수사기관에 넘겼다.

범인 신하사는 19일 낮 2시경 기자들과 만나고 "단독범행이며 애인 박순자(25ㆍ가명)에게 배신당하고 홧김에 냉정한 사회에 분풀이 하기 위해 이같은 짓을 저질렀으며 후회하지 않는다"고 태연히 말했다.

이 사건은 지난 13일 국방부 청사 안에서 있은 초병들의 여인납치 난행사건과 같은 날 전방지역 인제에서 있은 장교의 소녀 추행사건에 이어 6일 간에 현역 군인에 의해 저질러진 세번째의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날 이곳에는 강서용 국방차관을 단장으로 한 진상조사단 일행과 2군사령관 문형태 중장, 한신 육군참모차장 그 밖에 양탁식 경북지사, 고동털 도경국장 등 군ㆍ관 고위당국자들이 모여들어 진상규명과 사후대책에 나서고 있다.

사망자 시체 5구는 안동 도립병원에 안치되었으며 중경사자들은 안동 도립병원ㆍ광제의원ㆍ성소의원ㆍ제중의원등에 분산수용돼 가료중인데 이중 중태에 빠진 5명은 대구 육군병원에 이송됐다.

-동아일보 1968년 5월 20일

 

1. 사건의 성격: '사회에 대한 증오가 낳은 무차별 살상'

  • 일시 및 장소: 1968년 5월 18일(토) 밤, 경북 안동시 문화극장 앞.
  • 피해 규모: 사망 5명(어린이 2명 포함), 부상 35명.
  • 범인: 23세 신영식 하사 (전방 사단 소속).
  • 범행 도구: 미제 수류탄(M26) 2발.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군용 무기 관리의 허술함 가장 치명적인 점은 휴가 중인 하사가 살상용 수류탄 2발을 부대 밖으로 반출했다는 사실입니다. 1960년대는 무장공비 침투 등 안보 위기가 고조된 시기였으나, 역설적으로 군인들이 개인 화기나 폭발물을 휴가 시 소지하거나 빼돌리는 사고가 빈번했습니다. M26 수류탄은 살상 반경이 넓어 좁은 극장 입구에서 터졌을 때 그 피해가 극심했습니다.

② '냉정한 사회'를 향한 빗나간 분풀이 범인 신 하사는 애인에게 배신당했다는 개인적인 이유를 "냉정한 사회에 대한 분풀이"로 확장했습니다. 특히 "후회하지 않는다"는 범인의 태연한 진술은 소시오패스적인 성향과 함께, 당시 청년층의 좌절감이 극단적인 폭력으로 분출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무고한 어린이와 관람객 1,300여 명을 잠재적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현대의 '묻지마 범죄'와 그 궤를 같이합니다.

③ 1968년 5월, 군 기강 해이의 정점 기사 중반부에 언급된 것처럼, 이 사건은 불과 6일 사이에 벌어진 세 번째 군인 관련 대형 사고였습니다.

  • 국방부 청사 내 초병들의 여인 납치 사건.
  • 전방 지역 장교의 소녀 추행 사건.
  • 그리고 이 수류탄 투척 사건까지. 1·21 사태(김신조 사건) 이후 군의 위상이 높았던 시기였지만, 내부적으로는 성 범죄와 강력 범죄 등 기강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었음을 보여줍니다.

④ 군·관 고위직의 대거 출동 국방차관, 2군사령관, 육군참모차장, 도지사 등이 한꺼번에 안동으로 모여든 것은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을 넘어 '정권의 안위와 민심 이반'을 걱정해야 할 수준의 중대 사안이었음을 시사합니다.

3. 사회적 파장과 시사점

  • 군에 대한 불신: 시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살상 무기로 시민을 학살했다는 점은 군에 대한 신뢰를 밑바닥까지 떨어뜨렸습니다.
  • 사법 처리: 당시 군사재판은 이러한 사회적 파장을 고려해 매우 엄격하게 진행되었으며, 신 하사는 이후 사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 안전 불감증의 경고: 영화를 보고 나오던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참변을 당한 이 사건은, 다중이용시설의 안전과 무기 관리 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