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해군(靑海君) 이지란(李之蘭)이 죽었다.
이지란은 동북면(東北面)의 청주부(靑州府) 사람이다. 옛 이름은 두란첩목아(豆蘭帖木兒)이다. 타고난 천성이 순후(純厚)한데다 무재(武才)가 있었다.
일찍부터 태상왕을 따라 정벌하는 싸움터에 나가 승첩(勝捷)하여 마침내 개국 공신(開國功臣)의 반열에 올랐다. 태상왕이 이를 대접함에 특별히 두터이 하고, 또 정사 좌명 공신(定社佐命功臣)을 주었다. 병이 더욱 위독해지자 글을 올려 말하기를,
"신은 본토(本土)의 사람으로 타국(他國)에서 죽사온즉, 시체를 불태워 도로 본토에 장사지내어 전하께서 신으로 하여금 본토의 풍속을 따르게 하소서. 또 전하께서 조심조심 덕(德)을 닦아 영원히 조선을 보전하시기 바랍니다."
하니, 임금이 매우 슬퍼하여 3일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시호(諡號)를 양렬(襄烈)이라 내렸으며, 장사 지내기를 그의 청과 같이 하여 주었다. 세 아들이 있으니, 이화영(李和英)·이화미(李和美)·이화수(李和秀)이다.
-태종 2년(1402년)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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