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 구성우(具成祐)의 처 유씨(柳氏)를 주살(誅殺)하였다. 유씨가 처음에 김익달(金益達)에게 시집갔었는데, 익달이 장가든 지 사흘 만에 버리었다. 뒤에 구성우에게 시집갔는데, 구성우가 아들이 없이 죽었다. 유씨가 명복을 빈다고 성언(聲言)하고 승가사(僧伽寺)에 가서 중 신생(信生)과 사통(私通)하여, 신생이 때 없이 왕래하였다. 구성우의 종 소고미(小古未)와 계집종 영생(英生) 등이 엿보다가 잡으려 하니, 유씨가 신생과 공모하여 도리어 두 사람을 살해하였다. 일이 발각되자, 헌사(憲司)에서 유씨와 신생을 잡아 국문하고 주살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정종)이 말하기를,
"범한 바가 크기는 하지만, 봄·여름은 만물이 생장하는 때라, 옛 법에도 죽이는 것을 꺼렸으니, 추분(秋分) 뒤를 기다려서 단죄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좌우가 말하기를,
"죄가 만일 십악(十惡)이 아니라면 가을을 기다려도 좋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만일 추분 전에 살생하는 것을 꺼린다면, 십악인지의 여부를 가릴 것이 있겠는가?"
하고, 한참 만에 헌사의 청대로 하였다. 항복한 왜인(倭人)과 오랑합(吾郞哈) 등이 정안공(靖安公/태종)에게 청하기를,
"원하건대, 그 죄를 용서하여 아내를 삼게 하여 주소서."
하니, 정안공이 허락하지 아니하고 말하였다.
"유씨는 세족(世族)이다. 차라리 죽게 둘지언정, 인달(仁達)의 아내와 같이 할 수는 없다."
정종 원년(1399년) 3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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