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連山)의 부인(婦人) 내은가이(內隱加伊)를 저자[市]에서 거열(車裂)하였다. 충청도(忠淸道) 연산현(連山縣) 백성 우동(牛童)의 아내 내은가이가 이웃 남자 강수(姜守)와 정을 통하였는데, 하루는 우동이 6일 동안의 양식을 싸 가지고 일 때문에 이웃 고을에 가니, 내은가이가 강수에게 이르기를,
"노중(路中)에서 기다렸다가 죽이는 것이 좋겠다."
하니, 강수가,
"노중(路中)에서는 나는 감히 못하겠다. 네가 만일 중로(中路)에서 머물게 하여 같이 잔다면, 내가 죽일 수 있다."
하였다. 우동이 곧 돌아오게 되자, 내은가이가 주찬(酒饌)을 가지고 중로(中路)에서 맞이하여 술을 먹이고, 인하여 말하기를,
"오늘 저녁은 밭 가운데서 같이 자며 곡식을 지키는 것이 좋겠소."
하니, 우동이 믿고 그대로 따랐다. 내은가이가 그 남편이 깊은 잠에 빠진 것을 엿보고, 슬그머니 일어나 강수를 데리고 와서 말하기를,
"이게 바로 그때요."
하니, 강수가 마침내 죽여서 가까운 땅에 묻었다. 사람들이 자못 의심하니, 드디어 다른 곳에 옮겨 묻다가 일이 발각되었다. 형조(刑曹)에서 아뢰니, 임금(태종)이,
"처첩(妻妾)이 남편을 죽인 사건으로 이처럼 끔찍한 일은 없었다."
하고, 황희(黃喜)에게 묻기를,
"이 여자가 범한 것 같은 것을 외방의 수령은 어떻게 형벌하는가?"
하니, 황희가 대답하기를,
"곧 목을 벱니다"
하였다. 임금이,
"율에는 능지(凌遲)의 법이 없느냐?"
하니, 대답하기를,
"이전에는 거열(車裂)로 능지(凌遲)를 대신하였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한 고을에서 죽이면 누가 알겠느냐? 잡아서 서울로 올려와 저자[市]에 세우고 대중에게 효유(曉諭)한 뒤에, 사지(四肢)를 나누어 여러 도(道)에 보이라."
하였다.
태종 7년(1407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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