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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사형 집행

이정재, 신정식 사형을 집행 (1961년)

Lucidity1986 2022. 5. 30. 18:30

혁명재판소 상소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던 이정재(45)와 신정식(33)은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으로부터 형집행이 '확인'되어 19일 하오 3시 37분경 수감중인 서울형무소에서 교수로 형이 집행되었다. 신정식의 공범으로 인정되었던 김한용(36=전 순경)은 박 최고회의의장에 의하여 2년이 감형되어 '징역 5년'이 확정되었다.

그런데 최고회의공보실은 19일 상오 10시 40분 이 확인사실을 발표했는데 이것은 '혁재및혁검조직법' 제 9조의 2에의한 의장의 '형집행확인조치'인 것이며 혁명재판소 상소심 판결이 있은 뒤 처음으로 내려진 조치이다.

공보실은 박 의장의 확인조치가 취해진 시간이나 이, 신 두 사형수에 대한 사형집행 시간 등을 일체 밝히지 않고 다만 "사형의 집행은 24시간 내에 법의 절차에 따라 행하여질 것이다" 라고만 말하였던 것이다.

이정재는 '단체적 폭력행위'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제 7조) 피고사건으로 지난 9월 28일 혁재상소심판부에서 사형확정언도를 받았었다. 그리고 4.19 당시 서울시내 서대문 동양극장 뒷마당에서 '데모' 학생 최기태(19)군을 타살한 사형수 신정식과 당시 순경 김한용은 선거에 관련된 살인(부정선거 관련자 처벌법 제 5조) 피고사건으로 역시 9월 28일 상소심에서 신에게는 사형확정, 김에게는 징역 7년을 확정시켰던 것이다.

공보실 발표문은 다음과 같다.

국가재건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은 18일 혁명재판소 상소심에서 판결이 확정된 이정재, 신정식, 김한용에 대하여 최초로 형집행의 확인조치를 취하였다.
박의장은 이들에 대한 확인조치에서 상습적 폭력집단의 수괴인 이정재와 의거학생을 타살한 신정식에 대해서는 판결대로 사형을 확인하였으며 4.19 당시 말단경찰관의 직에 있었던 김한용에 대해서는 죄상이 경미할뿐아니라 개전의 정이 농후함을 참작하여 2년을 감형하는 온정을 베풀었다.
동 확인조치는 혁명재판소 및 혁명검찰부조직법 제 9조의 2에 의거한 것이며 사형의 집행은 24시간 내에 법의 절차에 따라 행해질 것이다.

-동아일보 1961년 10월 20일

 

1. 사건의 성격: '혁명재판'을 통한 구악(舊惡) 일소

  • 집행 대상: 이정재(화랑동지회 회장, 조직폭력배 수괴), 신정식(일명 '고릴라', 폭력배).
  • 집행 근거: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및 부정선거 관련자 처벌법.
  • 집행 방식: 교수형 (서울형무소).
  • 확인권자: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정치 깡패의 종말: 이정재 이정재는 자유당 정권과 결탁하여 야당 정치인 테러, 선거 방해 등을 일삼았던 '동대문파'의 두목이었습니다. 군사정권은 민심을 얻기 위해 이들을 '단체적 폭력행위' 혐의로 기소하여 극형에 처했습니다. 기사에서 "상습적 폭력집단의 수괴"라고 명시한 것은 그를 단순 범죄자가 아닌 사회악의 근원으로 규정했음을 보여줍니다. 집행 전 이정재가 "나는 깡패입니다. 국민의 심판을 달게 받겠습니다"라는 팻말을 걸고 조리돌림을 당했던 것은 당시 군사정권의 강력한 사회 정화 의지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입니다.

② 4·19 의거 학생 타살에 대한 단죄: 신정식 신정식은 4·19 혁명 당시 서대문에서 데모하던 최기태 군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는 민주주의를 열망하던 학생들의 희생에 대한 국가 차원의 응징이라는 상징성을 가집니다. 군사정권은 4·19의 정신을 일부 계승한다는 명분을 세우기 위해 관련자들을 엄단했습니다.

③ 박정희 의장의 '형집행확인권' 기사에서 강조된 '형집행확인조치'는 당시 혁명재판소의 판결이 사법부의 최종 판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최고 권력자인 박정희 의장의 승인(확인)을 거쳐야 완성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당시 입법·사법·행정의 모든 권한이 국가재건최고회의에 집중되어 있었음을 증명하는 법적 절차입니다.

④ 감형을 통한 '온정'과 명분 쌓기 말단 순경이었던 김한용에게 2년을 감형해 준 대목은 흥미롭습니다. "개전의 정이 농후함을 참작하여 온정을 베풀었다"는 발표는 군사정권이 엄격한 법 집행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정당한 권력임을 대내외에 과시하려는 정치적 수사로 풀이됩니다.

3. 시대적 맥락: 군사정권의 정당성 확보

1961년 10월은 군사정변이 일어난 지 약 5개월이 지난 시점입니다. 박정희 의장은 구정권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폭력 세력을 단죄함으로써 '혁명 과업' 수행의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이정재와 신정식의 처형은 그 상징적 정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