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버스 차장(車掌)들이 요금을 받는데 감정을 품고 있던 현역군인 20여 명이 작당하여 밤중에 버스 주차장을 급습하여 버스안에서 잠자고 있던 차장 소년들을 집단 구타하여 중상을 입힌 사건이 발생하였다.
지난 7일 밤 11시경 동래읍 장전동 소재 버스주차장 안으로 육군 제 1206 건설공병단 216대대 소속병사 20여 명이 모 중위(성명미상) 인솔하여 잠을 자고 있던 차장(모두 소년)10여 명을 무조건 끌어내려가지고 돌과 몽둥이고 구타하였다 하는데 구타당한 차장 중 이인환(18), 황정용(18), 김명수(19), 정실수(19)군 등 4명은 두부 및 안면등에 중상을 입고 인접 병원에 입원 가료중이라고 한다.
-동아일보 1959년 12월 9일
1959년 말에 발생한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군 조직이 집단적으로 민간인을 습격한 '보복성 테러'라는 점에서 매우 충격적입니다. 특히 가해자가 장교(중위)의 지휘 아래 움직인 현역 군인들이고, 피해자가 어린 소년들이었다는 점이 시대의 비극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1. 사건의 성격: '군(軍) 조직에 의한 민간인 소년 보복 테러'
- 가해자: 육군 제1206 건설공병단 소속 병사 20여 명 (중위 인솔).
- 피해자: 10여 명의 버스 차장 소년들 (18~19세).
- 사건 요약: 평소 버스 요금 징수 문제로 불만을 품고 있던 군인들이 조직적으로 작당하여, 밤중에 주차장을 급습해 잠자던 소년들을 흉기로 집단 구타한 사건입니다.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장교가 주도한 조직적 범죄 가장 경악스러운 점은 '모 중위'가 병사 20여 명을 직접 인솔했다는 사실입니다. 개인 간의 싸움이 아니라, 하급 장교가 자신의 지휘권을 남용해 군인들을 사적인 보복의 도구로 동원했습니다. 이는 당시 군 내부의 기강이 얼마나 처참하게 무너져 있었는지, 그리고 군이 민간 치안 시스템을 얼마나 우습게 여겼는지를 증명합니다.
② 사회적 약자를 향한 무차별 폭력 피해자들은 당시 '차장(차장 소년)'이라 불리던 10대 노동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하루 종일 고된 노동을 마치고 버스 안에서 잠을 자고 있던 무방비 상태였습니다. 20여 명의 건장한 군인이 몽둥이와 돌을 들고 10대 소년들을 끌어내어 구타한 행위는 '군인'이라는 신분을 망각한 비인도적인 처사였습니다.
③ 요금 갈등: 공짜 승차가 당연시되던 시대 범행의 동기가 '요금 징수에 대한 감정'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당시 군인들이 버스를 이용하며 무임승차를 시도하거나 위세를 부리는 일이 잦았고, 이를 정당하게 제지하려던 어린 차장들에게 앙심을 품은 것으로 보입니다. 공권력의 상징인 군복이 '무임승차권'처럼 통용되던 시대적 부조리가 낳은 참극입니다.
3. 시대적 배경: 1950년대 후반의 군사 만능주의
1959년은 이승만 정권 말기로, 사회 전반에 군의 영향력이 막강했습니다. "군인이 하면 법이다"라는 식의 잘못된 인식이 병사들부터 장교에 이르기까지 뿌리 깊게 박혀 있었습니다. 특히 건설공병단처럼 외곽 지역에 주둔하며 민간과 접촉이 잦은 부대에서 이러한 마찰과 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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