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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 조선열전(2)

Lucidity1986 2022. 3. 13. 20:08

2. 분열과 치욕

그런데 원래 좌장군 순체는 궁중에서 황제를 모시고 그 총애를 받고 있었으며, 그가 이끄는 연나라 군사들과 대(代)나라 군사들은 매우 흉악하였고 또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뒤 매우 교만해져 있었다. 하지만 누선장군 양복은 제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와 처음부터 공격에 실패해 병사들을 많이 잃었기 때문에 사병들은 싸우기를 겁냈고 군관들 역시 마음속으로 불안해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우거왕을 포위할 때도 항상 화해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좌장군 순체의 공세는 오히려 매우 급했고, 조선은 은밀히 사람을 파견하여 누선장군과 우호를 맺고 누선장군과 투항에 관한 일을 협의하면서 왕래하였다. 그러나 아직 아무 것도 결정이 나지 않은 상태였다.

순체는 몇 번이나 양복과 함께 공격하기로 약속했지만, 양복은 조선과 항복 약정을 하루바삐 체결하기를 희망하고 있었기 때문에 파병을 하여 좌장군과 합류하지 않았다. 좌장군 역시 사람을 보내 조선으로 하여금 항복하게 하였으나 조선은 좌장군에게 항복하기를 거부하였고 마음속으로 누선장군에게 의지하였다. 그러므로 두 장군은 서로 협조하여 공동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그러자 순체는 양복을 의심했다.

‘누선장군은 전에 패전의 죄과가 있고, 지금 조선과 은밀하게 사적으로 왕래하고 있는데, 조선은 투항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혹시 그가 반란을 기도하고 있지나 않을지, 다만 실제로 일으키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않은가.’

이때 황제는 탄식했다.

“너희 장수들이 참으로 무능하구나. 지난번에 위산으로 하여금 우거왕을 회유하여 항복하도록 하고 우거는 그의 채자를 보내 알현하도록 하였는데 위산은 사자로서 과감하게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좌장군과의 계략이 서로 맞지 않아 결국 조선과의 항복 약속이 수포로 돌아갔다. 지금 두 장군이 성을 포위하고 또 의견 불일치가 발생하여 오랫동안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고는 제남(濟南)태수 공손수(公孫遂)를 사신으로 보내면서 두 장군의 실책을 바로잡으라고 명하였다.

공손수가 도착하자 순체는 “원래 조선이 벌써 항복했을 것인데 아직 항복하지 않은 것은 원인이 있습니다.” 하면서 누선장군이 수차에 걸쳐 공동 작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그의 전략을 공손수에게 말하면서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도 그를 체포하지 않으면 아마 큰 우환이 생길지 모릅니다. 비단 누선장군만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조선 군사들과 함께 나의 군대를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공손수는 이 견해에 동의하고 천자가 내린 부절로 누선장군을 좌장군의 군영으로 불러 의논하도록 하고 그 자리에서 당장 좌장군 휘하 사병들에게 명령하여 누선장군을 체포하도록 하고 그의 군대를 합병시켰다. 이를 황제에게 보고하자 황제는 오히려 공손수를 주살(誅殺)하였다.

한편 좌장군은 양군을 겸병한 뒤 전력으로 조선을 공격하였다. 이때 조선의 재상 노인(路人), 재상 한음(韓陰), 니계(尼谿 : 조선의 작은 나라) 재상 삼(參), 그리고 장군 왕겹(王唊)이 함께 상의하였다.

“우리는 원래 누선장군에게 항복하려 했는데 이제 누선장군이 체포되었고, 오직 좌장군이 두 군대를 통합하여 거느리고 있으니 전쟁은 갈수록 긴박해지고 있소. 아마도 우리가 이기지 못할 것 같은데 우리 왕은 또 항복을 거부하고 있소.”

그러고는 한음, 왕협, 노인 모두 도망을 쳐 한나라에 투항하였다. 노인은 노상에서 죽었다.

원봉(元封) 3년(BCE 108) 여름, 니계 재상 삼은 사람을 보내 조선의 우거왕을 살해하고 한나라에 투항하였다. 하지만 왕검성은 아직 함락되지 않아 우거의 대신이던 성이(成已, 혹은 성기(成己))가 관리들을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다. 좌장군은 우거의 장자 장항(長降)과 노인의 아들 최(最)를 파견하여 백성들을 회유하고 성이를 죽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조선을 평정하고 그 땅을 네 개의 군으로 분할하였다. 그리고 삼은 홰청후(澅淸侯)에 봉해졌고, 한음은 적저후(荻苴侯)에 봉해졌으며, 왕겹은 평주후(平州侯)에 봉해지고, 장항은 기후(幾侯)에 봉해졌다. 최는 아버지가 죽은 공으로 인해서 온양후(溫陽侯)에 봉해졌다.

좌장군은 황제에게 소환되어 공적을 다투고 질투하여 모략했다는 죄로 처형되어 그의 목은 시장에 걸렸다. 누선장군도 좌장군의 도착을 기다려 같이 공격해야 하는데도 멋대로 진격하여 결국 많은 군사를 잃은 죄로 처형되어야 했으나, 속죄금을 내고 서민으로 강등되었다.

태사공(太史公:司馬遷)은 말한다.

“우거왕은 험난한 요새의 지형을 과신하여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고, 섭하는 공을 속여 한나라와 조선의 전쟁의 실마리를 만들었다. 또한 누선장군은 마음이 좁아 재난을 만나 죄를 지었다. 그의 실책을 후회하였지만 오히여 반란을 의심받았다. 좌장군 순체는 공로를 다투다가 결국 공손수와 함께 처형되었다. 이 전쟁에서 두 장군 모두 치욕을 당했으므로 아무도 공적이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