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IMF 극복 확신(경향신문 1998년 1월 1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는 1일 『지금위 위기는 본질적으로 금융위기이지 경제 전체의 위기가 아니다』라며 『우리 모두가 뭉쳐서 이 난국을 극복해 나갈 때 99년중에는 국제통화기금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만큼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김 당선자는 이날 『위대한 한국인의 저력을 보여주자』하는 제목의 신년사를 통해 이같이 밝히고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정치적 민주화의 토대위에서 IMF 개혁을 통한 경제선진화를 이룩하는 일』 이라며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같이 참여하고, 같이 극복하고, 같이 변화해서 한국인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주자』고 강조했다..(후략)
남북 비핵선언 완전 타결(조선일보 1992년 1월 1일)
남-북한은 31일 판문적에서 핵관련 제3차 대표접촉을 갖고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공동선언』을 채택했다.
양측 대표들이 가서명까지 끝낸 공동선언은 전문과
▲ 핵무기의 시험 생산접수 보유저장 배비사용금지
▲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 핵재처리 및 농축시설 보유 금지
▲ 핵통제공동위 구성
▲ 비핵화 검증을 위한 상호 동시 사찰
▲ 효력발생 등 6개항의 본문으로 구성됐다.
이날 채택된 공동선언은 각기 필요한 내부절차를 거쳐 오는 2월 19일 제 6차 고위급회담에서 문본을 교환, 회담합의서와 함께 발효된다...(후략)
"중공과 직교역 추진" 노 당선자 회견(조선일보 1988년 1월 1일)
노태우 차기대통령은 31일 조선일보와 가진 신년회견에서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토대의 준비라는 더 큰 명제를 위해 이제까지의 남-북한 교차승인방식에 유연성을 주어 우리가 먼저 길을 열어주는 것이 상책』이라고 말함으로써 중소의 대한승인에 앞서 미-일의 북한 승인을 용인할 수 있는 정책을 추진할 의향이 있음을 비쳤다.
노 차기대통령은 자신의 취임전 중공 방문계획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 답변을 피한 채 『중공과는 곧 직접교역을 실현하고, 서울올림픽 이후 무역대표부 같은 기구가 교환설치되도록 한 뒤, 이러한 바탕 위에서 외교관계 수립을 착실히 수행해 나갈 작정』 이라고 밝혔다...(후략)
박대통령 "유신과업 수행에 박차"(매일경제 1973년 1월 1일)
박정희대통령은 1일 상오 "새해에는 무슨일이 있더라고 유신과업을 계속 과감하게 수행하여 유신이념을 착실히 구현하고 유신질서를 굳건히 정착시켜 놓아야한다"고 강조하고 "우리는 지난해에 보였던 그 신념과 용기, 그 단결을 다시한번 과시하여 유신과업 수행에 계속 박차를 가해나가자" 고 제창했다.
박대통령은 이날 새해를 맞아 신년사를 통해 이같이 말하고 "유신과업을 저해하고 방해하는 요인은 과감이 히를 제거하고 시정해나가며 그 반면에 유신이념에 부합되는 모든 요인을 앞으로 더욱 계발하고 발전시켜 나가야할것"이라고 촉구하면서 "이것이 바로 10월 유신을 계기로 단행해야 할 국정 전반에 대한 일대 개혁의 기본방향임을 밝혀둔다"고 역설했다..(후략)
혁명은 아직 진행과정이다(경향신문 1961년 1월 1일)
새해의 첫날을 맞이하여 지나온 일년을 돌아다보고 앞날을 내다보건대 실로 우리 겨레가 겪어온 체험도 파란만장하였거니와 온 세계가 또한 격심한 소동 속에서 일년을 지내온것이 사실이다.
이같이 생각하고 보매, 우리는 먼저 3.15 부정선거를 완전히 무효화시키고 이승만, 이기붕을 제거함으로써 이나라의 정권을 평화리에 교체되도록, 학생을 선두로한 대중의 궐기와 사위의 정세가 일치되게하였던 신의 가호에 감사를 드리지 아니할수없다.
이것이 이른바 4월혁명이요, 이 혁명으로써 12년간 불의와 부패의 독재정권은 붕괴되었고 그때까지 1년여를 무기정간당하고 있던 본보는 이승만 하야와 거의 동시에 복간되었던 것이니 4월민주혁명은 비단 본보뿐 아니라 국민대중에게 언론의 자유를 소생시켜 주었던것이다.
그리하여 십여년간 국민이 염원하던 내각책임제가 7.29선거를 거쳐서 성립되었으니 이로써 대한의 제2공화국은 신생을 개척하기위해서 그 용보를 내디디었고, 이제 제2공화국은 제1회의 신년을 오늘 맞이하게 된 것이다...(후략)
이북동포를 구제(동아일보 1954년 1월 1일)
이대통령 신년사
새해를 또 맞게되는 이때에 다소간 감상이 없을 수 없는것이다.
대체로 말하자면 대공산전쟁이 3년이 지났으되 통일을 아직도 완성치 못하고 이북동포 700만 명 중에서 동아와 질역과 폰탄과 화재와 병역이 오르고 내리는 중에 또 적의 학설과 피박 등등 혹화를 당하여 아라사(*소련) 군대와 괴뢰군대와 중공준이 차례로 점령해서 살육 강탈 강간 등 말할 수 없는 혹화를 당하는 중에서 누가 식물이나 의복이나 약품으로 도와주는것은 없고 모두 뺏어가기만 했으며 더욱이 이북에는 농지가 적어서 이남의 곡식을 의뢰하고 살던 공토로서 이와 같이 끊어놓고 앉아서 지금 7,8년간을 이렇게 지내왔으니 300만명이라도 살아있다는것도 천명으로 보전한 것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남에서 해외 각 우방들의 도움을 많이받고도 죽는다 산다 할 이때에 저 지옥같은중에서도 싸워지내는 우리 동포들이 울며 소리지르며 하루바삐 북진해서 살려달라고 하고 있는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고있는것같이 지내며 국제상 관계로 인연해서 진퇴를 마음해도 못하고 이와 같이 날이 가고 달이 가는 것을 무심히 지내고 있으니 이 어찌 사람의 도리라 하며 어찌 동족 상애하는 의리라 하리오
우리의 원하는것과 결심대로 하면 우리 군인과 남녀 민중이 합해서 무기가 있으나 먹으나 굶으나 사나 죽으나 밀고올라가서 끝을 막고 판결을 내고 싶으며 또 이 판결을 내고 싶으면 누구를 막론하고 다 저당할수 있다는 자신을 가지고 있는 바이다...(후략)
독립운동의 새출발에 좌우양익보조합치(동아일보 1946년 1월 1일)
민족적 모동이요 국제헌장에 위반되는 조선에 신탁통치제 실시가 한번 보도되자 전국방방곡곡의 3천만 민중의 분노는 드디어 폭발되엇다
군전청 조선인직원일동의 총사직을 비롯하야 각공장, 회사, 학교, 심지어 유흥계까지 전부 총파업의 불합작운동은 전개되어 8.15 이후 해방의 감몽에 도취되엇든 화려한 서울 시가도 어느듯 하로밤동안에 일절 철시하고 암흑과 침묵에 싸인 사의 각오의 상징이니 이것은 손에 촌철도 쥐지 못한 약소민족의 무기인 불합작운동의 신출발이다.
이 민족적 통의에 호응하야 이미 임시정부에서는 국무위원 구씨 외에 민간측 각계대표 76인을 선정하야 신탁통치반대 국민총동원회의중앙위원회를 조직하고 금후 불합작 운동은 일절 여기에서 논의할터인 바 자주독립완성을 위하야 좌우 양진영에서 보조일치를 맹세하고 탁치반대운동노선을...(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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