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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기타

천추사 박신생이 칙서 세 통을 가지고 경사에서 돌아오다

Lucidity1986 2022. 8. 1. 03:10

천추사(千秋使) 박신생(朴信生)이 칙서 세 통을 싸서 받들고 경사에서 돌아왔다. 임금(세종)이 의장(儀仗)을 갖추어 세자(문종) 이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모화관에 거둥하여 칙서를 맞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다. 그 첫째에 말하기를,

"지금 목란하(木蘭河) 등 위(衛)의 야인 지휘(指揮) 올고리(兀苦里) 등이 아뢰기를, ‘근자에 라리(剌里) 지역에 가서 흑룡강의 칠성(七姓) 야인들이 송화강을 건너서 조선국에 가서 침노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 하였다. 짐(朕:선덕제)이 생각하건대, 이 도적들이 간사하고 속이니 허위인지 사실인지의 여하는 알지 못하나, 이에 왕이 보내 온 사신이 돌아가는 편에 특별히 왕에게 일러 알게 하는 것이니, 왕은 변방을 지키는 관원에게 경계하여 밤낮으로 마음을 써서 방비하여, 소홀한 근심이 없게 하여 짐의 뜻에 부합하게 하라."

하였고, 그 둘째에 말하기를,

"왕이 먼젓번에 보내 온 반찬과 음식을 만드는 부녀자들이 모두 음식을 조화(調和)하는 것이 정하고 아름답고, 제조하는 것이 빠르고 민첩하고, 두부(頭腐)를 만드는 것이 더욱 정묘하다. 다음번에 보내 온 사람은 잘하기는 하나 전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니, 칙서가 이르거든 왕이 다시 공교하고 영리한 여자 10여 인을 뽑아서, 반찬·음식·두부 등류를 만드는 것을 익히게 하여, 모두 다 정하고 숙달하기를 전번에 보낸 사람들과 같게 하였다가, 뒤에 중관을 보내어 국중에 이르거든 경사(京師)로 딸려 보내도록 하라."

하였고, 그 셋째에 말하기를,

"중국의 땅이 심히 더워서 비록 해청(海靑)이 있으나 기르기가 어려우니, 왕의 나라에서 해청을 잡을 수가 있거든 적당한 사람을 시켜 가져와서 짐(朕)의 한가한 시간에 날려 보는 소용에 이바지하게 하라. 그리고, 오는 사람을 시켜 중로에서 잘 살도록 보살펴 길러서 소루하고 실수함이 없게 하라."

하였다.

세종 16년(1434년) 12월 24일

 

TMI : 칙서를 보낸 이는 명나라 5대 황제 선종 주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