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에서의 패전 보고가 이르자 상(선조)이 대신과 대간을 불러 입대(入對)케하고 비로소 파천(播遷)에 대한 말을 발의하였다. 대신 이하 모두가 눈물을 흘리면서 부당함을 극언하였다. 영중추부사 김귀영(金貴榮)이 아뢰기를,
"종묘와 원릉(園陵)이 모두 이곳에 계시는데 어디로 가시겠다는 것입니까? 경성(京城)을 고수하여 외부의 원군(援軍)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우승지 신잡(申磼)은 아뢰기를,
"전하께서 만일 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시고 끝내 파천하신다면 신의 집엔 80노모가 계시니 신은 종묘의 대문 밖에서 스스로 자결할지언정 감히 전하의 뒤를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수찬 박동현(朴東賢)은 아뢰기를,
"전하께서 일단 도성을 나가시면 인심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전하의 연(輦)을 멘 인부도 길 모퉁이에 연을 버려둔 채 달아날 것입니다."
하면서, 목놓아 통곡하니 상이 얼굴빛이 변하여 내전으로 들어갔다.
선조 25년(1592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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