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申砬)이 충주(忠州)에 이르렀을 때 제장(諸將)들은 모두 새재[鳥嶺]의 험준함을 이용하여 적의 진격을 막자고 하였으나 입(砬)은 따르지 않고 들판에서 싸우려고 하였다.
27일 단월역(丹月驛) 앞에 진을 쳤는데 군졸 가운데 ‘적이 벌써 충주로 들어왔다.’고 하는 자가 있자, 신립은 군사들이 놀랄까 염려하여 즉시 그 군졸을 목베어서 엄한 군령을 보였다.
적이 복병(伏兵)을 설치하여 아군의 후방을 포위하였으므로 아군이 드디어 대패하였다. 입은 포위를 뚫고 달천(㺚川) 월탄(月灘)가에 이르러 부하를 불러서는 ‘전하를 뵈올 면목이 없다.’고 하고 빠져 죽었다. 그의 종사관 김여물(金汝岉)과 박안민(朴安民)도 함께 빠져 죽었다.
선조 25년(1592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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