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백만원의 빚을 짊어진 아내가 행방을 감춘 후 빚독촉을 받아오던 남편이 5남매가 잠든틈에 방안에 연탄불을 들여놓고 집단자살을 꾀하여 남편과 아들 등 2명이 죽고 4명이 중독되어 생명이 위독한 일가족 집단자살사건이 27일 새벽 서울의 외곽지애에서 발생했다.
이날 새벽 4시 30분쯤 서울 송천동 55(7통 1반) 최영일(38/무직)씨 일가족 6명이 집단으로 연탄 「가스」에 중독되어 있는것을 최씨 집에 세든 김인규(32/운전사)씨가 발견, 병원에 옮겼는데 최씨와 그의 막내아들 상현(3)군은 병원에 이송 도중 사망했으며 최씨의 2녀 상옥(9/서울숭인국민교 2년)양 3년 상숙(6) 장녀 상금(14/성만고등공민교중퇴) 장남 상용(11/서울숭인국민교)등 4명은 「가스」에 중독되어 수도의대 부속병원에 입원가료중인데 2녀 상옥양 3녀 상숙양은 생명이 위독하다.
이날 새벽 죽은 최씨집에 세들고있는 김인규씨가 아랫방에서 심한 신음소리가 나는것을 듣고 내려가 방문을 열려했으나 문은 방안으로 잠겨져있었으며 문을 부수고 들어간 김씨는 방안에 연탄불이 피워져 있고 일가족 6명이 「가스」에 중독된 것을 발견했다.
지난 19일 최씨집에 세든 김인규씨와 이웃사람들의 말을 종합하면 최씨는 시내 모 제약회사에서 일하고 있었으나 6개월전에 실직했으며 최씨의 부인 이정순(36)씨가 동대문시장에서 구호물자 장사를 하여 생계를 이어왔다. 부인 이씨는 사업때문에 약 4백만원의 빚을 지고 있으며 20여 명이나 되는 채권자의 빚독촉에 견디다 못해 지난 19일 부인 이씨는 김인규씨로 부터 받은 전셋돈 5만원을 가지고 행방을 감추었다 한다.
부인이 행방을 감춘 후부터 매일 20여명의 채권자가 집에 몰려와 남편 최씨에게 빚독촉을 하며 심지어 10여명의 채권자와 함께 밤을 세운적도 있었다 한다. 최씨가 자살을 결심한 날인 26일에도 10여명의 빚장이가 찾아와 밤 10시반쯤에 돌아갔으며 최씨는 이날 밤 5남매가 잠든틈에 아궁이의 연탄을 방안에 들여와 집단자살을 기도했다.
최씨는 모대학을 중퇴한 「인텔리」이며 6개월전에 실직한데다 부인의 많은 부채때문에 고민해왔다한다. 방세간이 있는 40여평의 집도 일주일전에 김인규씨에게 세를 주고 최씨 일가는 문간방에 들었는데 셋돈으로 빚을 갚으려 했으나 부인 이씨가 가지고 도망을 친데 큰 충격을 받았다 한다.
세간은 채권자들이 전부 팔아가져갔으므로 이불장하나가 겨우 남아있을 뿐이다.
최씨의 장녀 상금양은 돈이 없어 지난 3월 성만고등공민학교를 중퇴했으며 국민학교에 다니는 장남 상용군과 2녀 상옥양은 점심을 굶을때가 많았다 한다.
의식을 회복한 장녀 상금양은 병실 「베드」를 둘러보고 "아버지는 어디 갔어요"하며 눈물짓고 있었다.
-경향신문 1963년 5월 27일
1. 사건의 성격: '빈곤과 부채가 초래한 가장의 극단적 선택'
- 일시 및 장소: 1963년 5월 27일 새벽, 서울 송천동 (현 강북구 미아동/송천동 일대).
- 피해자: 최영일 씨(38)와 5남매 등 총 6명 (최 씨와 막내아들 사망, 나머지 4명 중태).
- 원인: 실직과 부인의 거액 부채(400만 원), 그리고 채권자들의 가혹한 빚 독촉.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지식인 실직자의 몰락 (대학 중퇴 인텔리)
당시 '대학 중퇴' 정도의 학력은 상당한 엘리트(인텔리) 대접을 받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6개월간의 실직은 지식인 가장을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제약회사라는 번듯한 직장을 잃은 후 가장의 권위와 생계 수단이 동시에 붕괴되면서 느꼈을 심리적 박탈감이 사건의 기저에 깔려 있습니다.
② '400만 원'의 무게와 가혹한 채무 독촉
1960년대 초반 400만 원은 당시 쌀 한 가마니 가격 등을 고려할 때 일반 서민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거액이었습니다.
- 24시간 감시: 10여 명의 채권자가 집에서 밤을 새우며 독촉했다는 대목은 당시 채무자 보호 제도가 전무했음을 보여줍니다.
- 세간 강탈: 이불장 하나만 남기고 모든 가재도구를 채권자들이 가져갔다는 점은, 법적 절차보다는 사적 제재에 가까운 가혹한 수탈이 일상화되었음을 시사합니다.
③ 동반 자살(집단 자살)이라는 이름의 타살
남편 최 씨는 아이들이 잠든 틈에 아궁이의 연탄불을 방안에 들여놓았습니다. 이는 자신의 죽음뿐만 아니라, '내가 없으면 남겨진 아이들은 더 비참해질 것'이라는 절망적인 판단하에 자행된 극단적 선택이었습니다. 3살 막내부터 14살 장녀까지, 아이들의 생사권마저 가장이 결정해버린 전형적인 동반 자살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④ '연탄가스'라는 시대적 비극
1960년대는 난방 수단이 나무에서 연탄으로 급격히 바뀌던 시기입니다. 연탄은 서민의 따뜻한 친구이기도 했지만, 환기가 불량한 주거 환경과 맞물려 이처럼 극단적 선택의 도구로 사용되거나 사고로 생명을 앗아가는 '가난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3. 시대적 맥락: 보릿고개와 사회 안전망의 부재
사건이 발생한 5월은 이른바 '보릿고개'가 절정에 달하는 시기입니다.
- 고등공민학교 중퇴: 정규 중학교에 가지 못해 공민학교에 다니던 장녀마저 돈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습니다.
- 결식아동: 초등학생 아이들이 점심을 굶는 일이 예사였던 당시 농촌과 도시 빈민가의 참상이 기사에 고스란히 녹아 있습니다.
- 부인의 가출: 전셋돈 5만 원을 들고 행방을 감춘 아내의 행동은, 비난받기보다는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발악이자 동반 자살을 피하기 위한 유일한 탈출구였을지도 모른다는 슬픈 추측을 낳습니다.
사건 피해 및 가계 상황 요약
| 항목 | 상세 내용 |
| 가족 구성 | 부부와 5남매 (총 7명 중 부인 제외 6명 사고) |
| 사망자 | 부(38), 4남(3, 막내) |
| 부상자 | 장녀(14), 장남(11), 2녀(9), 3녀(6) - 가스 중독 중태 |
| 경제 상황 | 6개월 실직, 부채 400만 원, 전셋돈 5만 원으로 생계 유지 시도 |
| 주거 환경 | 40평 집을 세주고 문간방으로 밀려난 처지 |
4. 시사점: "아버지는 어디 갔어요"
의식을 회복한 장녀 상금 양이 아버지를 찾는 장면은 독자의 가슴을 미어지게 합니다. 자식을 길거리에 내버려 둘 수 없어 함께 죽음을 택한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의 사랑과 고통을 이해하기엔 너무 어린 아이들의 모습은 60년대 한국 사회가 짊어져야 했던 가난의 업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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