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선 유일의 제련소인 충남 장항제련소가 폭발하야 10여명의 사상자를 내었다 한다.
상무부장 발표에 의하면 11월 22일 오전 2시 반 장항제련소가 폭발하야 사망 1명 중상 4명 경상 6명을 내는 불상사가 발생하얐는데 원인은 목하 조사중이라 한다.
그런데 폭발 발생은 냉수통관이 파열하여 금은 등을 포함한 용해한 아류산염에 수분이 들어 폭발의 유인이 되었다고 하는데 용해한 금속이 튀는 바람에 사상자를 내는 동시에 화재가 발생하였는데 조선인 직원과 미인고문 아-써- 소좌의 민속한 활동으로 즉시 진화하였다 한다.
-경향신문 1947년 11월 26일
1. 사건의 성격: '냉각수 유입에 의한 수증기 폭발'
- 일시: 1947년 11월 22일 오전 2시 30분
- 장소: 충남 장항제련소 (당시 남조선 유일의 제련소)
- 피해: 사망 1명, 중상 4명, 경상 6명 및 화재 발생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기술적 원인: 수증기 폭발(Steam Explosion) 기사에서 언급된 "냉수통관(냉각수 파이프) 파열로 용해된 아류산염(용융 금속 및 슬래그)에 수분이 들어갔다"는 대목은 전형적인 수증기 폭발의 메커니즘을 설명합니다.
- 원리: 수천 도에 달하는 용융 금속에 물이 닿으면, 물이 순식간에 기화하며 부피가 수천 배로 팽창합니다. 이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용융 금속이 사방으로 비산(튀는 현상)하게 되는데, 이때 발생하는 열과 파편이 인명 피해의 주원인이 됩니다.
② 장항제련소의 전략적 가치 1947년 당시 장항제련소는 남한 경제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인 1936년에 완공되어 금, 은, 동 등을 생산하던 이곳은 해방 후 부족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산업용 원자재를 공급하는 '유일한 제련 시설'이었습니다. 따라서 이곳의 폭발은 단순한 사고를 넘어 국가 산업 역량에 타격을 주는 중대 사안이었습니다.
③ 미군정기(美軍政期)의 협력 구조 기사에 등장하는 '미인(미국인) 고문 아서 소좌'는 당시 미군정 산하에서 한국의 주요 산업 시설을 관리·감독하던 실권자였습니다. 사고 발생 시 조선인 직원과 미국인 고문이 함께 진화 작업에 나섰다는 묘사는 해방 직후 과도기적 시설 관리 체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④ 야간 작업 중 발생한 불상사 사고 시각이 오전 2시 30분인 것으로 보아, 당시 전력난과 물자 부족 속에서도 국가 기간 산업인 제련소는 24시간 풀가동 체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노후화된 시설(냉수통관 파열)과 피로가 누적된 야간 작업 환경이 맞물려 발생한 전형적인 시설 노후 재해입니다.
3. 시대적 맥락: 해방 후 기술 공백
해방 직후 한국은 일본인 기술자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메울 숙련된 기술 인력이 부족했습니다. 장항제련소 같은 고난도 설비를 운영하면서 부품 교체나 정밀 점검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며, 이번 '냉수통관 파열' 역시 이러한 관리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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