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태종4

태상왕이 연화방 신궁에서 훙하다 태상왕(태종)이 〈연화방(蓮花坊)〉 신궁(新宮)에서 훙(薨)하니, 춘추가 56세이었다. 태상왕은 총명하고 영특하며, 강직하고 너그러우며, 경전과 사기를 박람(博覽)하여 고금의 일을 밝게 알고, 어려운 일을 많이 겪어 사물의 진위(眞僞)를 밝게 알며, 한 가지 재주와 한 가지 선행(善行)이 있는 자도 등용하지 아니한 일이 없고, 선대의 제사에는 반드시 친히 참사하고, 중국과의 교제에는 반드시 정성을 다하고, 재상에게 〈국사를〉 위임하고 환관을 억제하며, 상줄 데 상주고, 벌줄 데 벌주되, 친소(親疎)로 차등을 두지 아니하고, 관직을 임명하되, 연조로 계급을 올려 주지 아니하고, 문교(文敎)를 숭상하고 무비(武備)를 닦으며, 검박한 덕을 행하고 사치와 화려한 것을 없애어, 20년 동안에 백성이 편하고 산물이.. 2022. 7. 17.
태상왕이 별전에서 승하하시다 태상왕(太上王/태조)이 별전(別殿)에서 승하(昇遐)하였다. 임금이 항상 광연루(廣延樓) 아래에서 자면서 친히 진선(進膳)의 다소(多少)와 복약(服藥)에 있어서 선후(先後)의 마땅함을 보살폈는데, 이날 새벽에 이르러 파루(罷漏)가 되자, 태상왕께서 담(痰)이 성(盛)하여 부축해 일어나 앉아서 소합향원(蘇合香元)을 자시었다. 병(病)이 급하매 임금이 도보(徒步)로 빨리 달려와 청심원(淸心元)을 드렸으나, 태상이 삼키지 못하고 눈을 들어 두 번 쳐다보고 승하하였다. 상왕(上王/정종)이 단기(單騎)로 빨리 달려오니, 임금(태종)이 가슴을 두드리고 몸부림을 치며 울부짖으니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었다. 치상(治喪)은 한결같이 《주자가례(朱子家禮)》에 의하고, 봉녕군(奉寧君) 복근(福根)으로 하여금 전(奠)을 주장하게.. 2022. 7. 17.
태조의 상사를 조문하는 황제의 칙서와 부의 기보와 임관이 칙서(勅書)와 사부(賜賻)를 받들고 왕궁에 이르렀다. 백관 분사(百官分司)가 태평관에 나아가 앞에서 인도하고, 임금(태종)이 상장(喪杖)을 버리고 질(絰)을 벗고 최복(衰服)으로 대문 밖에 나아가 맞이하였다. 정비(靜妃)의 곡위(哭位)를 경연청(經筵廳)에 베풀고 시녀(侍女)를 거느리고, 유장(帷帳)을 쳤다. 백관(百官)은 전정(殿庭)에 서립(序立)하였다. 사신이 정전(正殿)에 이르러 남향하여 서매, 임금이 세자와 종친을 거느리고 정전에 올라가 북향해 서서 사배(四拜)하고, 백관도 또한 사배하였다. 예(禮)가 끝나서 사신이 나가매,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대문 밖까지 전송하였는데, 한결같이 의주(儀注)와 같이 하였다. 그 칙서(勅書)는 이러하였다. "조선 국왕(朝鮮國王) 이(李) 에게 칙(勅.. 2022. 7. 17.
백관을 모아 강상인을 거열하고 박습과 이관을 목베며, 친족들을 귀양보내다 상왕(태종)이 박은·조말생·이명덕·원숙을 불러 보고 말하기를, "강상인과 이관은 죄가 중하니 지금 마땅히 죽일 것이요, 심정과 박습은 상인에 비하면 죄가 경한 듯하였다. 괴수(魁首) 심온이 돌아오지 않았으니, 아직 남겨 두었다가 대질(對質)시키는 것이 어떠한가. 그렇지 않으면 인심(人心)과 천의(天意)에 부끄러움이 있지 않겠는가." 하니, 박은이 아뢰기를, "대질시키고자 하신다면 상인만 남겨두고 세 사람은 형벌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심온의 범한 죄는 사실의 증거가 명백하니, 어찌 대질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남겨 두는 것이 옳지 못합니다. 그리고 반역을 함께 모의한 자는 수모자와 종범자를 분간하지 않는 법이오니, 어찌 차등(差等)이 있겠습니까." 고 하였다. 이에 의금부에서 계하기를, "옥에서 곤란한.. 2022. 7.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