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4개사단을 포함하는 10만의 유엔군 대군을 20일 중부 한국회갈색저즌고지에 잠복하고 있는 중공군 및 북한괴뢰군을 공격하여 12리 이상을 전진하였다.
이 공격에는 미 제9 및 제10의 양 군단이 참가하였는데 그 전선은 54리에 이르렀다. 2일 전 맥아더 장군의 진두지휘로 시작된 이 도륙작전에 한국 진흙길을 북상하는 약 6만의 미군과 영국군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군 및 한국군이 참가하였다.
한국군 1개 사단은 산길을 따라 전진하여 38선남방 15리 지점까지 도달하였다. 이에 대한 적의 저항은 산만하였다. 북한 괴뢰군의 일부는 공포에 사로잡혀 급속히 퇴각하였다. 또 다른 지점에서는 중공군이 산병호 내에서 전면에 바리케이트를 구축하고 완강히 저항하였다. 이선에서는 공산군 약 4만이 배치되어있는데 여기에는 진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중공군 1개 사단이 포함되어있다.
이 전선은 서방 양편으로부터 동방으로 원주 북방을 지나 동남방으로 휘어 평창 남방 3리지점에 이르고 있다. 양평은 서울 동방 27리며 원주로부터오 이와 거의 같은 지점에 있다.
평창은 원주 동부 15리 지점에 위치한다. 이 강력한 연합군 공세의 제1차 목적은 원주 북방 10리 지점에 있는 횡성인것 같다. 즉 연합군 부대는 동시 동서양면으로부터 이곳에 접근하고있으며 또 다른 유엔군 일부대는 남방으로부터 공산군 방위진으로 향하고 있다.
-동아일보 1951년 2월 24일
'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 > 고향 늬우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량 농가의 실태 현지보고 - 강원도 편(3)(1957년) (0) | 2023.11.16 |
---|---|
멱 감던 삼남매가 횡사(1956년) (0) | 2023.11.16 |
면장이 토지소득세 일부 착복(1955년) (0) | 2023.11.16 |
전국 모범지서 심사 공근지서가 제1위(1954년) (0) | 2023.11.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