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나게 쉬고 싶다

God rest my soul

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전쟁

중공군 이남 침입설(1950년)

Lucidity1986 2022. 6. 13. 00:51
중공군 이남 침입실
사령부 공보관 부정

맥아더 사령부 공보관은 7일 기자단에게 「우리가 아는 한 중공군은 아직 38이남에는 침입하지 않았으며 또한 원산 함흠ㅈ고의 동해안에도 도달하지 않았다」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서북부 지구에서 대체로 침입한 중공군의 최남단은 평양 서남방의 진남포 지구이며 평양 동남방에 있어서도 전기 지구와 대략 동일한 평행선에 있다. 적 잔존 「게리라」는 장기간에 걸쳐 원산 서방 및 서북방에서 활발히 책동하고 있었으며 중공군이 장진호 지구에서 남방 및 서남방으로 이동 중이라고 하나 동 「게리라」와는 아직 연결되지 않았다고 믿어진다. 그들의 각자의 위치를 알고 있는 한 현재로서는 연결하여야 할 특별한 필요가 없을 것이다. 전기 양 적군들 간엔 통신 연락이 되어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영국 제27여단은 평관 남방의 진지 정비를 계속 하고있으며 영국 제 29여단은 동 지구에서 방어진지를 확보하고 있다. 전기 양 여단은 지난 24시간 중 적과의 접촉에 대하여는 보고가 없다."

-조선일보 1950년 12월 10일

 

1. 사건의 성격: '폭풍 전야의 낙관과 정보의 괴리'

  • 시기: 1950년 12월 7일(발표일) ~ 12월 10일(보도일).
  • 핵심 내용: 맥아더 사령부 공보관이 중공군의 38선 이남 침입설을 공식 부인함.
  • 상황: 장진호 전투와 청천강 전투에서 유엔군이 큰 타격을 입고 후퇴하던 긴박한 시점.

3. 주요 분석 포인트

① "38선 이남 침입은 없다"는 공보관의 부정

기사가 보도된 12월 10일은 이미 평양이 함락(12월 5일)된 직후였습니다. 사령부 공보관은 중공군의 최남단이 '진남포(평양 서남방) 지구'라고 선을 그으며, 아직 38선 이남으로 내려오지 않았음을 강조했습니다. 이는 전선의 붕괴를 경계하고 후방의 혼란을 막기 위한 심리전적 성격이 강한 발표입니다.

② 장진호 지구와 '게릴라' 부대 간의 연결 차단 강조

기사에서는 중공군이 장진호 쪽에서 남하하고 있으나, 원산 부근의 기존 게릴라 세력과 아직 '연결되지 않았다'는 점을 비중 있게 다룹니다. 이는 중공군 본대와 잔존 적군이 합쳐져 대규모 포위망이 형성되는 것을 유엔군이 가장 우려하고 있었음을 반증합니다. "연결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는 표현은 적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려는 의도가 엿보입니다.

③ 영국군 제27, 29여단의 방어 현황

영국군 여단들이 평양 남방에서 진지를 정비하며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다는 정보는 당시 유엔군이 평양 포기 이후 차기 방어선 구축에 사활을 걸었음을 보여줍니다. "지난 24시간 중 접촉이 없다"는 보고는 거대한 폭풍(중공군의 대규모 남하)이 닥치기 전의 기이한 고요함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3. 시대적 맥락: 전세 역전과 '흥남 철수'

1950년 12월은 국군과 유엔군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달이었습니다.

  • 장진호 전투: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미 해병 1사단이 처절하게 후퇴하던 시기입니다.
  • 흥남 철수: 이 기사가 보도된 12월 10일은 흥남 철수 작전(12월 15일~24일)이 본격화되기 직전입니다.
  • 괴리된 정보: 사령부는 "아직 38선 이남은 안전하다"고 했지만, 불과 20여 일 뒤인 1951년 1월 4일, 서울은 다시 적의 수중에 떨어지게 됩니다(1·4 후퇴).

당시 전황 및 부대 배치 요약

항목 상세 내용
중공군 최남단 진남포~평양 동남방 평행선 (사령부 공식 입장)
주요 전선 장진호 지구 남하 중, 원산/함흥 지구 게릴라 활동 중
유엔군 배치 영국 제27, 29여단이 평양 남방 방어진지 확보
특이 사항 38선 이남 침입설 공식 부인 (민심 안정 및 정보 보안용)

4. 시사점: 기사가 말하지 않은 진실

이 기사는 당시 미군 사령부가 중공군의 전력을 얼마나 조심스럽게 파악하고 있었는지, 혹은 대중에게 얼마나 정제된 정보만을 제공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실제로는 수십만 명의 중공군이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오고 있었고, 장진호에서는 미군 역사상 가장 참혹한 후퇴 작전이 전개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