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 옹이 서거할 때 사람들은 과연 처칠 다운 죽음이라고 경탄했다. 10여 일간 죽음과 싸운 것이 현대 과학으로서는 도저히 해석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박사는 처칠보다 더 고령이면서도 처칠보다 몇십 배나 더 죽음과 싸우다 숨졌다. 이박사 앞에서는 죽음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박사는 반수(半睡)상태로 몇 년을 살았다.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아마 이박사의 반수야 말로 현대과학으로 해석이 안된다고 해야할것 같다. 물론 이박사의 타고난 정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의사 말에 의하면 이박사의 반수는 인삼을 먹은 때문이라고 한다. 이박사가 대통령으로 권세가 하늘을 찌를 때 많은 아첨배들이 산삼을 갖다 바쳤다.
심산유곡에서 수백년 된 산삼을 캐다 바친일이 여러번 있었다. 오래 살기를 원한 이박사는 불로장수 한다는 그 산삼을 달여서 먹곤 했다. 그러나 노인들에게는 인삼을 약으로 안 쓴다는 말이 있다. 돌아갈 때 고통이 많이 때문이라 한다. 노인은 죽을 때 깨끗하게 숨져야 한다. 죽는것도 아니고 사는것도 아니고 이박사 처럼 반수를 계속한다면 가난한 서민 가정에서는 불효자식 소리 듣기 알맞다.
이박사가 반수생활을 오래한것도 기실 산삼의 힘인지도 모른다. 젊어서 옥고를 6,7연간이나 치렀고 이국에서 고산도 많이 겼었으련만 90장수를 한 것을 보니 이박사란 과연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박사는 묘한 자력 같은 힘을 풍기고 있다고 리처드 아렌 인가가 어느 글에 쓴 것을 보았다. 이박사를 대하면 자신도 모르게 끌린다는 것이다.
이박사가 웃으면 춘풍이 이는듯 했고 한번 노하면 산천이 떠는듯 했다고 한다. 동양식 과장이기는 하나 외국인의 말이고 보니 전혀 거짓만도 아닌 듯 하다. 자유당이란 이박사의 사당(私黨)이나 다름없었다. 이박사 없이는 자유당이란 생각할 수 없다. 자유당원이 못나서가 아니다. 이박사의 개성이 그만큼 뛰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경향신문, 1965년 7월 20일. 이승만 서거 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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