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당시 신문기사)/고향 늬우스

절량 농가의 실태 현지보고 - 강원도 편(3)(1957년)

Lucidity1986 2023. 11. 16. 00:30

○-홍천군을 다녀나온 기자는 다음으로 비교적 넓은 농토를 많이 가지고 있는(강원도에서는) 횡성군을 찾아보았다.

도 당국의 통계에 의하면 횡성군에는 2월 말 현재로 전체농가 10,691호중 4,270호가 「절량농가」 이다. 횡성군 안에서도 그중 「절량농가」 가 많은 곳은 둔내면으로 그곳은 총 농가수 917호 중 「절량농가」 가 무려 594호나 된다고 하는데 그래서 군에서도 특히 이 면에 대해서는 양곡배급도 하여주고 한편 천주교회 등 원조기관에 양곡원조를 요청하기도 한다고한다 ·

-이 횡성군의 「절량농민」 도 도내 다른곳의 「절량농민」 과같이 대개가 「화전민」 들이라고 하는데 역시 작년의 흉작으로 말미암아 이미 2, 3개월 전부터 양식이 떨어져 모진 고생을 하고 있는것이다 ·

-군 당국자에게 그들에대한 대책을 물은 즉 "군 자체로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고 도에서 내려을 대여양곡을 기다리고있을뿐 " 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대여양곡」 도 그 이름과 같이 꾸어주고 다시 받아드리는 양곡이기 때문에 상환능력이 없는 사람 또는 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대여하지 않는다고 하니 「절량농가」 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화전민」 들에게는 그것마저 돌아갈 것 같지도 않다.

실제 군 당국자도 「대여양곡」 을 분배하여 주는데 있어 "물론 면장 책임 하에 분배하게 되겠지만 그 대상자(=상환능력이 있는 농가)는 선정할 필요가 있겠지요- " 라고 말하고 있다. 

횡성군 에서는 풍수해 때문이 아니라 원체 경지가 영세한 관계로 절량된 한 농가(횡성면 나지리)를 찾아 그 실정을 보기로하였다.

그 농가의 호주는 김용태(19세)군으로 그의 어머니와 동생 도합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김군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지난 그2월 초순에 양식이 떨어졌다고 하며 그 후 인근의 여유있는 농가에서 벌서 「장리쌀」 한가마 반을 얻어다 먹었다고한다. 그러므로 김군의 집에서는 앞으로 뾰족한 수가 없는 한 6월 「보리고개」 까지 세 식구가 먹구 살려면 적어도 두가마 내지 세가마의 쌀이 더 필요한실정이다.

-김군의 집은 작년까지는 「논」 네 마지기(600평)를 부쳤고 금년 부터는 일곱 마지기를 부치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 횡성은 땅이 좋지 못해서 농사를 잘지어야 「논」 일곱 마지기에서 일년에 「벼」 열네 가마(쌀 7가마) 가 생산된다고 한다.

그런데 전기한 「장리쌀」 이란 가령 「봄」 에 쌀 한 가마를 꾸어먹으면 「가을」 에가서 쌀 한가마 반을 갚어야되는 일종의 「고리대여양곡」 으로서 김군 집의 경우 「보리고개」 까지 쌀 두가마를 더 꾸어다 먹는다면 앞으로 쌀 다섯 가마 2두 5승을 갚아야 한다.

그러면 결국 김군의 집에서 부치는 「논」 일곱 마지기에서 생산되는 「쌀」 일곱 가마 중 불과 한 가마 7두 5승이 남게 되는데 이것으로 김군의 집에서는 「토지수득세」 등 각종 세금을 물고 나면 자가 식량의 확보도 불가능하게 된다.

이리하여 내년에도 또 「장리쌀」 를 얻어 먹어야 하고 또 다음해도 그리고 또 그 다음해도 빚지지 않고는 도저히 살 수 없는 형편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비참한 생활을 계속할수밖에 없게 되는것이 김군 집의 실정이다.

전기한 김군의 집의 경우는 하나의 예일지 모르나 강원도 전역의 「영세농가」 45,852호는 적어도 그와 비슷한 처지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관계 당국에서는 이러한 「영세농가」 에 대한 항구적인 구제책을 생각하여본 일이 있는지?

-동아일보 1957년 3월 18일

 

1. 사건의 성격: 구조적 빈곤과 '빈곤의 악순환'

  • 배경: 1957년 3월, 강원도 횡성군 둔내면 및 나지리 일대.
  • 대상: 전체 농가의 약 40%에 달하는 절량농가(양식이 떨어진 집)와 영세 화전민.
  • 핵심 문제: 자연재해가 아닌 경지 면적의 영세성과 **고리대금(장리쌀)**으로 인해 자립이 불가능한 구조적 가난.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절량농가와 화전민의 비극

횡성군 둔내면의 경우 농가 10호 중 6호 이상(약 65%)이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산간 지대를 일궈 먹고사는 '화전민'들이었는데, 이들은 땅도 없고 상환 능력도 없다는 이유로 정부의 '대여양곡' 대상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 국가의 구호 시스템조차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했던 비정한 현실을 보여줍니다.

② '장리쌀'이라는 악마의 계약

기사 속 19세 가장 김용태 군의 사례는 당시 농촌의 수탈 구조를 명확히 계산해 보여줍니다.

  • 장리쌀의 이율: 봄에 1가마를 빌리면 가을에 1.5가마로 상환 (반년 만에 이율 50%).
  • 생산량: 7마지기(1,400평)에서 쌀 7가마 생산.
  • 부채 계산: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3.5가마를 빌리면 가을에 약 5.3가마를 갚아야 함.
  • 결과: 수확량 7가마 중 빚 5.3가마를 갚고 세금까지 내면 남는 것이 거의 없음 ->  다시 장리쌀을 빌려야 하는 무한 루프(Loop)에 빠짐.

③ 19세 소년 가장의 어깨

호주가 19세 청년이라는 점은 당시 전쟁이나 질병 등으로 부친을 잃은 세대가 일찍부터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하기 위해 600평에서 1,400평으로 경지 면적을 늘려보려 발버둥 치지만, 고리대금의 굴레 때문에 노력할수록 빚만 늘어나는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3. 시대적 맥락: 보릿고개와 토지수득세

  • 보릿고개: 가을에 거둔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은 3~6월 사이의 혹독한 기근기입니다.
  • 행정의 부재: 군 당국자는 "도에서 내려올 양곡만 기다릴 뿐"이라며 무력한 태도를 보입니다. 또한 상환 능력이 있는 사람만 골라 양곡을 빌려주겠다는 발언은 행정이 구제가 아닌 '회수'에만 급급했음을 보여줍니다.

4. 시사점: 기자의 날카로운 비판

기자는 단순히 실정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계 당국에서는 항구적인 구제책을 생각해 본 일이 있는지?"라고 강하게 일갈합니다. 이는 일시적인 미봉책이 아니라 농촌의 구조적 모순(영세성, 고리채)을 해결할 근본적인 정책을 요구하는 목소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