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 시민폭행 치사(1997년)

한총련 소속 대학생들이 5기 출범식을 강행하기 위해 한양대 서울캠퍼스에서 8일째 농성하던 중 20대 근로자를 붙잡아 경찰 프락치인지 여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집단구타해 숨지게 한 사건이 발생했다.
4일 오전 9시쯘 이 학교 학생회광 5층 교지 자료실에서 이석(李石ㆍ23 선반기능공)씨가 온몸에 피멍이 든채 쓰러져 있는 것을 한양대생 김덕곤씨(21ㆍ간호학과 2년)등 대학생 3명이 발견, 인근 한양대 부속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김씨는 『학생 진료반에서 일하고 있는데 자료실에 있던 남학생 1명이 찾아와 「위급한 환자가 있다」고 해 올라가 보니 이씨는 숨이 멎은 상태에서 맥박만 약하게 뛰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밤 이씨의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강신몽 법의학부장은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외부 가격으로 인한 대량 출혈이 이씨의 직접적인 사망 원인으로 보인다』고 1차 소견결과를 밝혔다.
-경향신문 1997년 6월 5일
1. 사건의 비극성과 성격
- 피해자: 23세의 청년 선반기능공(노동자) 이석 씨.
- 가해자: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소속 대학생들.
- 사건 요약: 시위 현장 근처를 지나던 무고한 시민을 '프락치(밀고기)'로 오인해 감금하고, 자백을 강요하며 집단 구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입니다.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공권력에 대한 극단적 피해망상과 폐쇄성 당시 한총련은 정부로부터 '이적단체' 규정을 받는 등 강력한 탄압을 받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외부의 압박은 조직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는 대신, 외부인을 무조건 의심하는 폐쇄적인 피해망상을 낳았습니다. 무고한 노동자를 경찰의 끄나풀로 단정 지은 것은 당시 학생운동 지도부의 판단력이 얼마나 마비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② 폭력의 정당화라는 위험한 논리 '민주화'라는 거대 담론을 앞세우며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위험한 논리가 학생사회에 침투해 있었습니다. 국과수 부검 결과 "수를 셀 수 없을 정도의 가격"이 있었다는 점은, 지성인을 자처하던 대학생들이 집단 광기에 빠져 인권을 철저히 짓밟았음을 증명합니다.
③ 학생운동 대중화의 종말 이 사건은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독재 정권의 폭력에 저항한다"던 학생들이 오히려 무고한 시민을 폭행해 살해했다는 사실은 학생운동의 도덕적 명분을 뿌리째 흔들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일반 시민들은 학생운동에 등을 돌렸고, 한총련은 대중적 지지를 완전히 상실하며 급격히 쇠퇴하게 됩니다.
3. 시대적 맥락과 파장
- 노동계와의 단절: 피해자 이석 씨는 선반기능공, 즉 '노동자'였습니다. 학생운동이 표면적으로는 '노학연대(노동자와 학생의 연대)'를 외쳤으나, 실제로는 현장 노동자를 프락치로 몰아 죽인 이 모순은 운동권 내부에서도 거센 비판을 받았습니다.
- 공권력의 명분 확보: 이 사건은 정부와 경찰이 한총련을 더욱 강력하게 탄압할 수 있는 결정적인 명분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한총련 핵심 간부들에 대한 대대적인 검거 선풍이 불었습니다.
4. 시사점
이 사건은 "정의로운 목적이라 할지라도 반인권적인 수단까지 정당화될 수는 없다"는 뼈아픈 교훈을 남겼습니다. 80년대의 순수했던 학생운동 정신이 90년대 후반에 이르러 어떻게 변질되고 고립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잔혹한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