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ity1986 2022. 5. 31. 02:39

관련재판 : lucidity.co.kr/1728

 

박대령 살해범에 대한 사형집행은 기보한 바와 같이 재판관으로부터 문중위 등 4명에게 사형언도가 있었으나 23일 집행즉전에 일등상사 신상우와 하사 배경용은 특사로 감형되었고 남어지 문상길, 손선호 양 명만은 이날 수색 어느 산골작이에서 각각 총살형이 집행되였다.

총살 전후 양인의 태도는 매우 태연한 인상이였다. 집행관이 총살집행을 선언한 다음 암살을 지휘햇다는 문중위 더러 담배한대를 주며 "할말 없느냐" 무르니 조용하나 열있는 어조로

"23세를 최후로 아모일도 못하고 감이 유감입니다. 조선사람으로서 민족의 비애를 깨닷고 XX의 XX를 받아 민족을 XX하는 군대가 되지말기를 바람니다"

고 최후의 한마디를 남기자 힌수건으로 눈을 가리우고 심장부에 검은표식을 부첫다.

이윽고 10메터 앞에 세운 형틀말둑으로 조용히 거러가 두팔을 뒤로 이운다음 집행관의 '쏘앗' 소리와 동시에 다섰사람의 일제사격이 문중위 심장부 검은표식에 집중되였었다.

약 1분 후 문중위 고개가 왼편으로 슬몃이 기우러질뿐 조용한 죽엄이였다. 다음 시체를 것에 담아 내오는 그길로 하수인 손이 시체에 목례를 하면서 형틀로 거슬러갔다. 마즈막으로 군가를 힘차게 부른다음 눈을 가리우니 "오 하나님이시여 민족을 위하여 싸우는 국방군이 되게 하여주십소서' 하고 기도를 올렷다.

이것이 마즈막 한마디였다.

-조선일보 1948년 9월 25일 

 

1. 사건의 성격: 국군 최초의 사형 집행과 감형

  • 집행 대상: 문상길(중위), 손선호(하사).
  • 특이 사항: 4명 중 신상우와 배경용은 집행 직전 '특사'로 감형되어 목숨을 건졌으나, 주동자와 직접 가해자만 사형이 집행되었습니다.
  • 집행 방식: 수색 인근 산골짜기에서의 총살형.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문상길 중위의 최후 진술과 'XX'의 의미

기사 속 검열된 'XX' 표시는 당시의 삼엄한 보도 통제를 짐작게 합니다. 문 중위의 발언 맥락을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민족의 비애를 깨닫고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민족을 **[학살]**하는 군대가 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행위가 개인적 원한이 아닌, 동포(제주도민)를 탄압하는 군의 작전 방식에 대한 저항이었음을 명분으로 내세웠습니다. 23세라는 젊은 나이에 "아무 일도 못 하고 감이 유감"이라는 말은 당시 청년 장교들이 가졌던 이념적 고뇌와 조국에 대한 뒤틀린 열정을 동시에 보여줍니다.

② 총살형의 구체적 절차

기사는 당시 군의 사형 집행 방식을 매우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심장부 검은 표식: 정확한 사격을 위해 피형자의 가슴에 표적을 부착함.
  • 5인 1조 사격: 집행관의 구령에 맞춰 5명의 사격수가 일제 사격하여 심리적 부담을 나누고 즉사를 유도함.
  • 형틀 말뚝과 묶인 두 팔: 도주나 저항을 방지하기 위한 전형적인 총살형의 구도입니다.

③ 손선호 하사의 종교적 귀의와 기도

실행범이었던 손선호 하사는 군가를 부르고 기도를 올리며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민족을 위하여 싸우는 국방군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기도는, 비록 상관을 살해한 범죄자였으나 스스로는 민족을 위한 길을 택했다는 자기 확신 속에서 죽음을 맞이했음을 보여줍니다. 먼저 죽은 문 중위의 시신에 목례를 하는 대목은 이들의 관계가 단순한 상하관계 이상의 이념적 결속체였음을 시사합니다.

3. 시대적 맥락: 건군기(建軍期)의 혼란과 비극

이 사건은 갓 태어난 대한민국 국군이 겪어야 했던 내홍을 상징합니다.

  • 이념의 전장: 군 내부가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져 총구를 서로에게 겨누었던 시대였습니다.
  • 제주 4·3의 그림자: 박 대령의 암살은 제주 4·3 사건이라는 거대한 비극의 파편이었습니다. 진압군의 지휘관과 그 부하들이 서로 죽이고 죽는 상황은 당시 한국 사회의 깊은 갈등을 단적으로 드러냅니다.

집행 현장 재구성 (1948. 09. 23.)

항목 상세 내용
집행 시각 1948년 9월 23일 (정부 수립 약 한 달 후)
집행 장소 서울 수색 인근 산골짜기
참관인 집행관 및 관계자
최후 태도 문상길(태연하고 논리적 진술), 손선호(군가와 기도)
역사적 기록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사형 집행 (군 제1호)

4. 시사점

기사 속 "조용한 죽음"이라는 표현과 달리, 이들의 죽음이 던진 파장은 조용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군 내부에 대한 대대적인 숙군(肅軍) 작업이 이어졌고, 이는 국군의 성격을 규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습니다. 또한 이 기사는 당시의 신문이 사형수의 마지막 순간을 얼마나 문학적이면서도 생생하게(심지어 군가의 가사나 기도 내용까지) 보도했는지를 보여주는 귀한 사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