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 총살 언도(1948년)
박대령 암살사건에 대한 고등군법재판은 드듸여 14일 오전 11시 반 문상길(23)중위, 신상우(20), 손선호(22), 배경용(19) 등 4명의 하사관에 대하야 총살을 언도하고 또 양회천(25) 이등병에는 무기, 강승규(22) 일등병에게는 5개년 징역을 언도하였다.
손 피고는 12일 공판에서 태연자약하게 암살동기와 목격한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박대령의 작전 공격은 불만하였다. 사격연습을 한다 하고 부락의 소, 기타 가축을 박살하였으며 폭도의 처소를 안내하는 양민을 총살한 례도 많다. 또한 매일 한사람이 한사람의 폭도를 체포하라는 둥 부하에 대한 애정이 전연 없었다."
한편 이 판결은 통위부장을 거쳐 군정장관의 인준이 있은 후 비로서 집행될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 1948년 8월 15일
결말 : lucidity.co.kr/1729
최후까지 태연(1948년)
관련재판 : lucidity.co.kr/1728 박대령 살해범에 대한 사형집행은 기보한 바와 같이 재판관으로부터 문중위 등 4명에게 사형언도가 있었으나 23일 집행즉전에 일등상사 신상우와 하사 배경용은 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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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건의 배경: 제주 4·3 사건과 강경 진압
- 피해자: 박진경 대령 (당시 제주 제9연대장).
- 가해자: 문상길 중위(주동자) 및 손선호 하사 등 부하 군인들.
- 사건 요약: 제주 4·3 사건 진압을 지휘하던 박 대령의 강경 작전에 반대하던 부하들이 1948년 6월 18일, 취침 중인 박 대령을 암살한 사건입니다.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지휘관의 작전 방식에 대한 불만과 인권 유린 피고인 손선호 하사의 진술은 당시 진압군 내부에서 벌어졌던 참상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 양민 학살 폭로: "폭도의 처소를 안내하는 양민을 총살했다"는 진술은 당시 진압 작전이 무고한 민간인 희생을 담보로 했음을 시사합니다.
- 가축 도살 및 가혹한 명령: 사격 연습을 핑계로 민간의 재산(소 등)을 파괴하고, "하루에 한 명씩 체포하라"는 무리한 할당량을 내린 지휘관의 태도는 부하들에게 심리적 거부감과 공포를 심어주었습니다.
② 군대 내 이념 대립과 하극상 이 사건은 단순한 불만을 넘어, 당시 군 내부에 깊숙이 침투해 있던 좌우익의 갈등을 보여줍니다. 문상길 중위 등 주동자들은 남로당 계열의 '프락치'로 지목되기도 했습니다. "부하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는 명분 뒤에는, 강경 진압을 저지하려는 이념적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③ 정부 수립일의 아이러니 기사가 실린 1948년 8월 15일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역사적인 날입니다. 국가가 탄생하는 축제의 날에, 군대 내부에서 발생한 암살 사건의 주동자들에게 '총살형'이 언도되었다는 보도는 당시 한국 사회가 처했던 극도의 혼란과 안보 위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3. 법적 처리와 집행: 대한민국 군사재판의 시작
- 총살형 언도: 주동자인 문상길 중위와 직접 가해자인 하사관 3명에게 사형(총살)이 언도되었습니다.
- 승인 절차: 미군정 체제에서 대한민국 정부로 이양되는 시기였기에 통위부장(국방부 장관 격)과 군정장관의 인준 절차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 결과: 문상길 중위와 손선호 하사 등은 이후 1948년 9월경, 수색 벌판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제1호 사형수로 총살형이 집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