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당에서 승려가 강간(1925년)
지난 12일 오후 2시경에 안성군 이죽면 칠장사에 있는 승려 한법윤은 엇던녀자를 강간한후 일시 대비극을 연출하엿다는데 자세한 내용을 드른즉
충북 연기군 조치원 사는 김성녀(37)의 딸 곽복순(18)은 일즉(*일찍) 자긔남편을 영별(永別)하고 그 친뎡모친되는 전긔(前記) 김성녀의 집에 와서 어린 동생 둘과 가난한 생활로 근근히 지내가든중 금년 오월경에 전긔 칠장사에 잇는 승려 김복동(21)이가 동냥하러 그 집에 와서 김성녀를 보고 동성동본이라고 남매의 의를 맷고 수차 왕래하면서 단오마지(*맞이)를 하느니 불공을 드리느니 하며 혹 돈과 쌀을 청구하여가지고 감언이설로 절에만 가면 살기도 조코 아이들 교훈도 잘한다고 달내던터인데
지난 칠월경에 무수한 동포의 참상을 주든 홍수는 역시 그들의 가련한 생활을 용서치 아니함으로 가옥이 도괴(*붕괴)되여 고아, 과부가 손을 마주잡고 로상으로 의지 업시 방황하다가 전긔 김복동의 말을 생각하고 칠장사를 차자왓더니 마참 김복동은 어대를 가고 업슴으로 도로 고향은 조치원으로 가려다가 발이 부릇고 긔운이 피곤하야 할수업시 그 절에서 밥을 하여주고 잇게 되엿는데
전긔 한법윤은 곽복순을 보고 하는말이 김복동은 나의 동생인데 당신을 다려다가 나하고 살게 할 작정으로 오란것인즉 내말을 드르라고 간정하는 것을 수차 거절하얏더니 한법윤은 불가튼 욕심을 참지 못하야 지난 12일 오후 2시경에 긔회를 어더 곽복순의 머리채를 끌고 법당으로 드러가 강간한 후에 사실이 발각될가 념려하야 즉시 곽복순을 내어쫏는동시에 먹은밥갑을 내라 빙자하고 싸가지고 온 의복까지 빼섯슴으로 할수업시 길가에서 신세를 늣기는 슬푼경상은 참아 볼 수가 업다하며 일반은 중의 비행을 분개한다더라.
-조선일보 1925년 8월 20일
1. 사건의 배경: 자연재해와 빈곤이 낳은 유민(流民)
- 피해자: 18세 과부 곽복순 (남편과 사별 후 친정어머니 김성녀와 거주).
- 사건의 단초: 1925년 7월 발생한 '을축년 대홍수'.
- 경위: 홍수로 집이 무너져 길거리에 나앉게 된 모녀가 평소 '남매의 의'를 맺으며 포교하던 승려 김복동의 감언이설을 믿고 경기도 안성의 칠장사로 찾아감.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을축년 대홍수라는 시대적 비극 기사에 언급된 "지난 칠월경 무수한 동포의 참상을 주든 홍수"는 한국 역사상 최악의 수해 중 하나로 꼽히는 1925년 을축년 대홍수를 말합니다. 당시 한강 유역을 비롯한 전국이 물바다가 되어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곽 씨 모녀가 연기군 조치원에서 안성 칠장사까지 먼 길을 걸어온 것은 재난으로 인해 생존권이 완전히 파괴되었음을 의미합니다.
② 종교를 이용한 기만과 가스라이팅 승려 김복동은 구걸(동냥)을 다니며 피해자의 어머니와 '동성동본'임을 내세워 친족 관계를 맺고 신뢰를 쌓았습니다. "절에 가면 살기도 좋고 아이들 교육도 잘 시켜준다"는 말은 재난 상황에서 가장 절박했던 '의식주'와 '미래'를 미끼로 한 전형적인 유인 수법이었습니다.
③ 공간의 성스러움을 짓밟은 만행: 법당(法堂)에서의 범죄 가해 승려 한법윤은 피해자를 유인한 김복동이 자리에 없자, 본색을 드러내어 소유욕을 보이다 거절당하자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특히 '법당'이라는 종교적으로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피해자를 끌고 가 강간했다는 점은 당시 독자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분노를 안겨주었을 것입니다.
④ 가해자의 이중적 잔인함: 경제적 수탈 강간 직후 사실이 탄로 날까 두려워 피해자를 내쫓으면서도, "먹은 밥값을 내놓으라"는 핑계로 피해자의 유일한 재산인 옷가지(의복)까지 빼앗았습니다. 이는 육체적 유린을 넘어, 재난민의 마지막 생존 수단까지 강탈한 극악무도한 행위입니다.
3. 사회적 시사점: '중(僧)의 비행'과 여론의 분개
기사 마지막의 "일반은 중의 비행을 분개한다더라"는 문구는 당시 불교계 일부의 타락상에 대한 민중의 시각을 대변합니다. 일제강점기 사찰 관리 체계가 변하면서 일부 승려들의 기강 해이와 범죄가 신문 지상에 자주 오르내렸고, 이는 종교계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