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청수사 테로(테러)사건 진상
지난 20일 오후 9시경에 남산동 2가 대한민청 연성도장 전동본원사본당에서 장택상씨의 직접 지휘 아래 급거 출동한 경찰대가 김두한을 비롯한 대한민청원 32명을 체포하고 시체 하나와 중경상자 8명을 발견하였다함은 기보한바와 같거니와 24일 수도청 발표에 의하면 동 시체와 부상자는 해방전부터 전기 김두한과 친히 지나던 사람으로 해방후 좌우익으로 갈리어 행동하게 되어 서로 감정을 품고 오던 중 19일 밤에 국제극장 앞에서 언쟁을 한것이 동기가 되어 20일 오후 2시경에 김두한 이하 수명이 전기 수명을 동연성도장에 납치한 후 동일 오후 5시반경까지의 사이에 구타한것이라는바 피해자 씨명은 다음과 같다.
사망 정진용(29)(익선동 166 태극흥업공사원)
중상자 김천호(29)(익선동 166=입원가료중), 장윤수(29)(돈암동 458)
경상자 이송근(22), 이상오(25), 김봉산(23), 이금성(20), 성광석(24), 이희수(26)
-경향신문 1947년 4월 25일
1. 사건의 성격: '이념 대립이 낳은 잔혹한 사적 제재'
- 주요 가해자: 김두한 및 대한민청(대한독립촉성전국청년총연맹) 단원 32명.
- 주요 피해자: 정진용(사망), 김천호(중상) 등 총 9명.
- 사건 요약: 과거 동지였으나 해방 후 좌익 활동을 하게 된 정진용 등을 납치하여 집단 구타하고 살해한 정치적 테러 사건입니다.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동지'에서 '적'으로: 해방 공간의 비극 기사에서 주목할 점은 피해자 정진용이 "해방 전부터 김두한과 친히 지내던 사람"이라는 대목입니다. 일제강점기에는 함께 활동했던 동지들이 해방 후 좌익(남로당 계열)과 우익(대한민청)으로 갈라지며 서로를 죽여야 할 적으로 간주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당시 한국 사회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던 이념 갈등의 비극성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② 공권력의 개입과 '장택상'의 등장 당시 수도경찰청장이었던 장택상이 직접 지휘하여 김두한을 체포했다는 점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 미군정 하에서 우익 청년단체의 폭력은 어느 정도 묵인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살인 사건으로까지 번지자 공권력이 전면적으로 개입한 것입니다. 김두한은 이 사건으로 미군정 재판부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기도 했습니다(후에 정부 수립 후 감형/석방).
③ '연성도장'이라는 폐쇄적 공간에서의 고문 사건이 벌어진 장소는 '연성도장'이라는 청년단 훈련 시설이었습니다. 오후 2시부터 5시 반까지 약 3시간 반 동안 30여 명이 달려들어 9명을 집단 린치한 것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고의적이고 조직적인 고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시대적 맥락: 김두한의 실체
대중 매체(드라마 '야인시대' 등)에서는 김두한이 정의로운 협객으로 묘사되곤 하지만, 실제 역사 속의 김두한은 이 기사처럼 우익 테러 조직의 선봉에 서서 반대 세력을 잔인하게 숙청하던 인물이었습니다. 사망한 정진용은 당시 전평(조선노동조합전국평의회)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었기에, 김두한에게는 제거해야 할 '빨갱이'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4. 시사점
이 사건은 "이념이 인간성보다 앞섰던 시대"의 참혹함을 보여줍니다. 개인적인 친분조차 이념의 틀 안에서 증오로 변질되었고, 그것이 거리낌 없는 폭력과 살인으로 정당화되던 해방 정국의 무질서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