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ucidity1986 2019. 3. 6. 01:53

처칠 옹이 서거할 때 사람들은 과연 처칠 다운 죽음이라고 경탄했다. 10여 일간 죽음과 싸운 것이 현대 과학으로서는 도저히 해석이 안된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의 이박사는 처칠보다 더 고령이면서도 처칠보다 몇십 배나 더 죽음과 싸우다 숨졌다. 이박사 앞에서는 죽음도 함부로 범접하지 못한 모양이다.

 

이박사는 반수(半睡)상태로 몇 년을 살았다.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니고 아마 이박사의 반수야 말로 현대과학으로 해석이 안된다고 해야할것 같다. 물론 이박사의 타고난 정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의사 말에 의하면 이박사의 반수는 인삼을 먹은 때문이라고 한다. 이박사가 대통령으로 권세가 하늘을 찌를 때 많은 아첨배들이 산삼을 갖다 바쳤다.

 

심산유곡에서 수백년 된 산삼을 캐다 바친일이 여러번 있었다. 오래 살기를 원한 이박사는 불로장수 한다는 그 산삼을 달여서 먹곤 했다. 그러나 노인들에게는 인삼을 약으로 안 쓴다는 말이 있다. 돌아갈 때 고통이 많이 때문이라 한다. 노인은 죽을 때 깨끗하게 숨져야 한다. 죽는것도 아니고 사는것도 아니고 이박사 처럼 반수를 계속한다면 가난한 서민 가정에서는 불효자식 소리 듣기 알맞다.

 

이박사가 반수생활을 오래한것도 기실 산삼의 힘인지도 모른다. 젊어서 옥고를 6,7연간이나 치렀고 이국에서 고산도 많이 겼었으련만 90장수를 한 것을 보니 이박사란 과연 뛰어난 인물이기도 했던 모양이다. 이박사는 묘한 자력 같은 힘을 풍기고 있다고 리처드 아렌 인가가 어느 글에 쓴 것을 보았다. 이박사를 대하면 자신도 모르게 끌린다는 것이다. 

 

이박사가 웃으면 춘풍이 이는듯 했고 한번 노하면 산천이 떠는듯 했다고 한다. 동양식 과장이기는 하나 외국인의 말이고 보니 전혀 거짓만도 아닌 듯 하다. 자유당이란 이박사의 사당(私黨)이나 다름없었다. 이박사 없이는 자유당이란 생각할 수 없다. 자유당원이 못나서가 아니다. 이박사의 개성이 그만큼 뛰어났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경향신문, 1965년 7월 20일. 이승만 서거 당시

 

1. 사건의 성격: '불사조 같았던 노정객의 쓸쓸하고도 끈질긴 최후'

  • 인물: 이승만 (전 대통령, 당시 90세).
  • 상황: 1960년 4·19 혁명으로 하와이로 망명한 지 5년 만에 서거.
  • 주요 내용: 끈질긴 생명력에 대한 경탄과 그 원인을 '산삼'과 '기(氣)'에서 찾는 동양적 해석.

2. 주요 분석 포인트

① 처칠과 이박사의 비교: '죽음과의 사투'

기사는 당대 최고의 정객이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1965년 1월 서거)을 끌어들입니다.

  • 처칠이 10일간의 사투 끝에 서거했을 때 세계가 경탄했지만, 이박사는 그보다 더 고령(90세)에 훨씬 더 긴 세월을 '반수(半睡) 상태'로 버텼음을 강조합니다.
  • 이는 이승만이라는 인물이 가진 독종 같은 생명력을 서구적 과학이 아닌 '신비주의적 위엄'으로 승화시키는 서술 방식입니다.

② 산삼의 저주(?): '불로장생의 양면성'

한의사의 말을 인용해 이박사의 장수와 고통스러운 최후를 산삼 탓으로 돌리는 대목은 매우 한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습니다.

  • 아첨배와 산삼: 권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바쳐진 수많은 산삼이 기력을 보했으나, 역설적으로 그것이 '깨끗한 죽음'을 방해했다는 논리입니다.
  • 서민적 비유: "가난한 가정에서는 불효자식 소리 듣기 알맞다"는 표현은 권력자의 비극을 서민의 눈높이로 끌어내려 풍자하는 대목입니다. 살지도 죽지도 못한 채 연명하는 것이 본인과 주변에 고통임을 꼬집고 있습니다.

③ '자력(磁力)' 같은 카리스마와 춘풍추상(春風秋霜)

리처드 알렌(역사학자)의 글을 인용하여 이승만이 가졌던 인간적 매력과 위압감을 묘사합니다.

  • 개성적 위엄: "웃으면 봄바람, 노하면 산천이 떤다"는 묘사는 그가 1인 장기 집권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 제도적 독재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개인의 카리스마'가 있었음을 인정하는 부분입니다.
  • 사당(私黨)으로서의 자유당: 자유당이 못나서가 아니라 이승만이라는 거산(巨山)이 너무 컸기에 당 전체가 그의 그림자에 가려졌다는 분석은, 그가 떠난 후 자유당이 직면할 몰락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3. 시대적 맥락: 망명지에서의 고독한 종말

1965년 당시 한국 사회는 이승만에 대해 매우 복잡한 감정을 가졌습니다.

  • 4·19로 쫓겨난 독재자라는 비판과, 독립운동의 거두이자 건국 대통령이라는 예우가 충돌하던 시기였습니다.
  • 기사 속 "옥고 6, 7년", "이국의 고생"에 대한 언급은 그에 대한 최소한의 연민과 존경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반수 생활'에 대한 묘사는 권력을 놓지 못했던 노욕에 대한 비유적 비판으로도 읽힙니다.

이승만 서거 칼럼 내용 요약

키워드 기사 내용 및 해석
반수(半睡)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상태. 인삼(산삼)의 힘으로 연명했다는 민속적 해석.
산삼(山蔘) 권력 시절 아첨의 상징이자, 죽음을 지연시켜 고통을 준 양날의 검.
개성(Personality) 처칠에 비견되는 강인함, 상대를 끌어당기는 자력 같은 매력.
자유당 이승만 1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조직. 그의 부재는 곧 조직의 종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