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Lucidity1986 2017.05.03 04:31

출처 : 위키백과


대수

시호 및 묘호

이름

재위기간(기원전)

1

태조문성왕(太祖文聖王)

자서여(子胥餘) 또는 자수유(子須臾)

1126~1082

2

장혜왕(莊惠王)

자송(子松)

1082~1057

3

경효왕(敬孝王)

자순(子詢 또는 子洵)

1057~1030

4

공정왕(恭貞王)

자백(子伯)

1030~1000

5

문무왕(文武王)

자춘(子椿)

1000~972

6

태원왕(太原王)

자예(子禮)

972~968

7

경창왕(景昌王)

자장(子莊)

968~957

8

흥평왕(興平王)

자착(子捉)

957~943

9

철위왕(哲威王)

자조(子調)

943~925

10

선혜왕(宣惠王)

자색(子索)

925~896

11

의양왕(誼襄王)

자사(子師)

896~843

12

문혜왕(文惠王)

자염(子炎)

843~793

13

성덕왕(盛德王)

자월(子越)

793~778

14

도회왕(悼懷王)

자직(子職)

778~776

15

문열왕(文烈王)

자우(子優)

776~761

16

창국왕(昌國王)

자목(子睦)

761~748

17

무성왕(武成王)

자평(子平)

748~722

18

정경왕(貞敬王)

자궐(子闕)

722~703

19

낙성왕(樂成王)

자회(子懷)

703~675

20

효종왕(孝宗王)

자존(子存)

675~658

21

천로왕(天老王)

자효(子孝)

658~634

22

수도왕(修道王)

자립(子立) 또는 자양(子襄)

634~615

23

휘양왕(徽襄王)

자통(子通) 또는 자이(子邇)

615~594

24

봉일왕(奉日王)

자참(子參)

594~578

25

덕창왕(德昌王)

자근(子僅)

578~560

26

수성왕(壽聖王)

자삭(子朔) 또는 자상(子翔)

560~519

27

영걸왕(英傑王)

자려(子藜)

519~503

28

일민왕(逸民王)

자강(子岡 또는 子崗)

503~486

29

제세왕(濟世王)

자혼(子混) 또는 자곤(子緄)

486~465

30

청국왕(淸國王)

자벽(子壁)

465~432

31

도국왕(導國王)

자징(子澄)

432~413

32

혁성왕(赫聖王)

자즐(子騭)

413~385

33

화라왕(和羅王)

자위(子謂) 또는 자습(子謵)

385~369

34

설문왕(說文王)

자하(子賀)

369~361

35

경순왕(慶順王)

자화(子華) 또는 자췌(子萃)

361~342

36

가덕왕(嘉德王)

자후(子詡)

342~315

37

삼로왕(三老王)

자욱(子煜) 또는 자오(子𤉇)

315~290

38

현문왕(顯文王)

자석(子釋)

290~251

39

장평왕(章平王)

자윤(子潤)

251~232

40

종통왕(宗統王)

자부(子否) 또는 자비(子丕) 또는 자휼(子恤)

232~220

41

애왕(哀王)

자준(子準)

220~195



참고문헌 

안정복의 《동사강목》(東史綱目)

이덕무의 《앙엽기》(盎葉記) - 국가지식포털 한국고전번역원 - 기자조선 계보

이만운의 《기년아람》(紀年兒覽) - 권5 기자조선

청주 한씨 중앙종친회 기자조선 왕위 계보


기원전 194년 이후 위만조선(衛滿朝鮮)으로 넘어간다.


1대 태조문성왕이 상나라에서 넘어온 기자라고 함..

물론, 위 연대는 확실한 고증은 되어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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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cidity1986 2017.05.03 01:22

마초가 귀순해 왔다는 소식을 들은 관우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여 제갈량에게 마초와 무를 겨루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니, 제갈량은 관우에게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孟起兼資文武, 雄烈過人. 一世之傑, 黥彭之徒, 當與翼德, 並驅爭先, 猶未及髥之絶倫逸群也.

맹기(마초)는 문무를 겸비하고 웅렬이 남보다 뛰어난 일세의 호걸로 응당 익덕(장비)과 말머리를 나란히 해 달리며 선두를 다툴 수는 있으나 염(관우) 그대의 절륜 일군함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산서통지(山西通志)권209, 예문(藝文)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관우전(關羽傳))

호승심이 강한 관우가 이 편지를 보고 크게 기뻐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으며, 빈객들에게 이 편지를 보여주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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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cidity1986 2017.05.02 16:56


서태후는 1908년에 이미 사망했으며

의화단 운동의 시기를 고려할 때 1900년의 오타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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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cidity1986 2013.07.07 13:40




패기 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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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ucidity1986 2012.12.19 09:00

초원복집 사건 1992년 정부 기관장들이 부산의 ‘초원복집’이라는 음식점에 모여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지역 감정을 부추기자고 모의한 것이 도청에 의해 드러나 문제가 된 사건이다.


1992년 대선을 앞둔 12월 11일 오전 7시 부산 초원복집에서 김기춘 법무부 장관 김영환 부산직할시장, 박일용 부산지방경찰청장, 이규삼 국가안전기획부 부산지부장, 우명수 부산직할시 교육감, 정경식 부산지방검찰청 검사장, 박남수 부산상공회의소장 등이 모여서 민주자유당 후보였던 김영삼을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고, 정주영, 김대중 등 야당 후보들을 비방하는 내용을 유포시키자는 등 관권 선거와 관련된 대화를 나눴는데, 이 내용이 정주영을 후보로 낸 통일국민당 관계자들에 의해 도청되어 언론에 폭로되었다. 이 비밀회동에서 "우리가 남이가, 이번에 안 되면 영도다리에 빠져 죽자",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부추겨야 돼."와 같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이 나왔다. 아파트 값을 반으로 내리겠다는 공약 등으로 보수층을 잠식하던 정주영 후보측이 민자당의 치부를 폭로하기 위해 전직 안기부 직원등과 공모하여 도청 장치를 몰래 숨겨서 녹음을 한 것이었다.


하지만 김영삼 후보측은 이 사건을 음모라고 규정했으며, 주류 언론은 관권선거의 부도덕성보다 주거침입에 의한 도청의 비열함을 더 부각시켰다. 이 때문에 통일국민당이 오히려 여론의 역풍을 맞았고, 김영삼 후보에 대한 영남 지지층이 결집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여세를 몰아 김영삼이 14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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